열리는 취업문… 한전-기업銀-롯데마트서 설레는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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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본보 ‘공공기관 고졸 채용률 1%’ 보도 이후… 희망과 우려 교차
“女商 졸업반 이미 절반 취직” vs “MB 한마디에 급조… 거품 될라”

“완철 올려!” “하나, 둘, 셋.”

2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한국전력공사 중앙교육원 배전실습장.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의 실습생 24명이 오전부터 실습에 한창이다. 8m 높이의 실습용 전신주에 오른 학생들은 지도교사의 지시에 맞춰 완철(전신주 꼭대기에 가로로 놓여 전깃줄을 고정하는 쇠막대기)을 전신주에 설치하는 작업을 하면서 연신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10kg이 넘는 쇳덩이를 8m 높이의 허공에서 다루려니 어느새 작업복은 땀에 푹 젖었다.

실습생 24명은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서울 수도전기공업고 3학년 학생들이다. 지난달 한전 특채로 뽑힌 이들은 12월 2일까지 계속되는 14주짜리 교육을 마치면 곧바로 기능직 정규사원에 임명된다. 실습생 최선 군(18)은 “대학에 대한 낭만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대학 나와도 한전 같은 곳에 취업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며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친구들도 부러워해, 가능하면 앞으로 오래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굳게 닫혀 있을 줄로만 알았던 공공기관의 고졸 취업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의 고졸 취업률이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본보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7월 “공직사회와 공기업에서도 고졸자 취업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공공기관들과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고졸 채용에 나서고 있다.

▶본보 7월 22일자 A1·3면 공공기관 고졸 채용률 1%

전문계고 학생들은 고졸채용 확대를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다. 과거 같으면 연봉 1500만 원 정도 주는 중소기업에 갈지, 수도권 전문대에 진학할지를 놓고 고민하며 패배의식에 사로잡혔겠지만 이제는 은행, 공공기관 등 ‘번듯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률이 1%에 불과하다는 본보 7월 22일자 보도.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률이 1%에 불과하다는 본보 7월 22일자 보도.
한전은 8월에 수도공고생 24명을 특채로 뽑았다. 고졸예정자를 받은 것은 12년 만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로, 예전 같으면 당연히 대학 입시를 준비했겠지만 과감히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습생 고명진 군(18)은 “학교에서 배울 때와 달리 직장에서 실습하니 성취감이 남다르다”며 좋아했다. 한전교육원 윤상천 배전교육팀장은 “학교에서 이론을 잘 배워서인지 가르치면 금방 금방 이해한다”면서도 “전신주에 올라가려면 덩치가 크고 힘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린 것 같아 조마조마하기는 하다”며 웃었다.

IBK기업은행 서울대역지점 김소나 양(18)은 7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여상 3학년에 재학하는 학생이지만 학교에서 증권투자상담, 재경관리 등 재무관련 과목을 꼼꼼히 배운 준비된 ‘은행원’이다. 기업은행에서 김 양은 벌써 유명인사다. 입사하자마자 고졸 신입사원 격려차 본점을 방문한 이 대통령과 악수를 했고, 여러 언론에 ‘15년 만의 고졸 행원’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다뤄졌다. 김 양은 “차별받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고, 어느 정도 차별을 감수하겠다고, 상처받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기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여상에 처음 갈 때만 해도 대학 진학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이젠 은행에서 업무 노하우를 익힌 뒤 대학에 진학해 실무와 이론을 접목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게 됐다.

고졸 취업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는 ‘경력 고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농산물코너에서 근무하는 백승호 씨(27)가 그런 사례다. 백 씨는 2004년 전남 여수 한영고 졸업 후 대학을 1년 다니다 아버지 병환으로 군 제대 후 자퇴했다. 고졸 신분으로 2007년부터 롯데마트 강변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가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백 씨는 “친구들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있는데 취업이 잘 풀리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며 “나 같은 사람이 일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면 더 많은 고졸자에게 기회가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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