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남자들이여! 눈물을 흘려라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치료법

많은 한국 남성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계속 억압해 감정적인 질식상태에 빠진다. 질식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DBR그래픽

김성재(가명·42) 씨는 최근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아내는 회사의 잘못이니까 자책하지 말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쉴 자격이 있다며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자격지심에 시달렸고 우울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비참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기 싫었던 그는 폭음을 일삼았고 술에 취하면 가족들에게 거친 말을 퍼부었다. 결국 아내가 이혼을 하든지, 문제를 치료하든지 선택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0호(2011년 10월 1일자)는 감정을 억압하고 참아야 남자답다는 잘못된 관념에 빠져 오히려 큰 충격이 왔을 때 잘 회복하지 못하는 한국 남성을 위한 심리치료법을 제시했다.

한국 남성은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달리다가 넘어져도 목청껏 울기 힘들다. ‘사내 녀석’이 그만한 일로 울면 못쓴다는 교육을 받는 탓이다. 싸울 때도 먼저 울면 진다. 우는 것 자체가 약해빠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 속에서 성장한 남자들은 감정적으로 무딘 사람이 돼 간다. 좌절이나 불안을 느껴도 이를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터놓고 얘기하는 것도 꺼린다. 하지만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좌절을 만나면 한꺼번에 문제가 터진다.

감정은 ‘마음의 감각’이다. 몸의 감각들은 우리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통증을 느끼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감정이 하는 역할도 똑같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보내는 신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우린 마음의 병을 앓는다. 내 마음이 아픈 것을 억압하는 사람은 남의 마음이 아픈 것도 억압한다. 그런 타입은 심정적으로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위로는커녕 “그만한 일에 뭐 그렇게 힘들어하나”라고 면박을 준다.

김 씨는 자신의 감정을 계속 억압해 알코올 문제와 우울증이 심해졌다. 다행히 가족들의 강권으로 그는 심리상담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자신을 가둬온 사실을 인정했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알코올에 의존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상담 과정에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다.

이제 그는 아내, 아이들과 다시 예전 관계를 회복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조그맣게 사업도 시작했다. 특히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남자답다는 것의 허상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아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아들에게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누구에게라도 힘들다고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감정을 억압하고 참는 것보다 오히려 더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사실도 물론 말해줬다.

양창순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mind-open@mind-open.co.kr　　
정리=송기혁 기자 kh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