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폐쇄회로(CC)TV를 장착한 감시로봇이 분주하게 고개를 움직인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이 로봇은 적외선을 이용해 외부인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위험상황이 발생했습니다”라는 경고음을 낸다. 이어 경비실과 경비업체에 관련 영상을 전송한다. 집이 비어 있을 때 초인종을 누른 외부인이 있다면 15초간 동영상이 녹화된다. 도난사고라도 발생하면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부건설이 지난달 30일 인천 계양구 귤현동에서 본보기집을 연 ‘계양센트레빌 2차’ 얘기다.
범죄예방시스템을 갖춘 ‘크라임 프리(Crime free) 아파트’가 늘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CCTV를 다는 수준을 넘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 전체를 감시하는 로봇을 설치하고,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첨단 범죄 예방시설을 도입하는 등 관련 시설 확충 경쟁에 나서고 있다.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셉테드)’ 인증 아파트의 증가는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셉테드’는 아파트 단지 내 사각지대에서의 범죄 발생을 줄이도록 고안된 설계 및 디자인 방식이다. 동부건설이 지난해 말 분양한 ‘계양센트레빌 1차’와 현재 분양중인 ‘계양센트레빌 2차’ 아파트는 지난해 말 셉테드 예비인증을 받았고, 현대건설이 올해 5월 말 분양한 서울 강서구 ‘강서힐스테이트’도 지난달 말 예비인증을 획득했다. 현대건설의 셉테드 인증 아파트에서는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설 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의 밝기를 차량이 움직이는 동선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하도록 해 어두운 조명 아래서 범죄가 발생할 개연성을 줄이도록 했다. 또 무선 비상콜 CCTV시스템을 도입해 위급 상황에서 비상버튼을 누르면 즉시 영상이 가정으로 송출돼 범죄를 예방하도록 했다.
아파트의 범죄예방시스템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계속 진화하는 추세다. 경기 김포시 한강신도시에서 짓고 있는 아파트 ‘자연& 힐스테이트’와 ‘자연& e편한세상’ 단지는 휴대용 무선단말기를 소지한 가족 구성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족안심시스템을 도입했다. 일부 아파트는 입주자의 홍채나 손등 혈관을 인식해 출입문이나 현관문을 열어주는 보안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설립된 한국셉테드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경훈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대림산업, 대우건설, SK건설 등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셉테드 인증 아파트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선진국처럼 범죄예방을 강화한 아파트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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