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캐나다 토론토 시 현대자동차 판매법인에서 만난 스티브 켈러허 사장(58·사진)은 올해 캐나다 기자들을 상대로 열었던 두 차례 설명회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올해 7월 “신형 ‘엘란트라’(아반떼 현지 모델명)가 혼다 ‘시빅’을 꺾고 승용차 부문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대부분은 “현대차가 요즘 잘나가지만 14년간 한 번도 정상을 내준 적이 없는 시빅까지 이길 수 있겠느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올 초 북미시장에 선보인 신형 엘란트라는 1∼8월 3만2937대가 팔려 1위인 시빅과의 격차를 110대로 바싹 좁혔다. 3위인 ‘마쓰다3’에는 7262대나 앞서 있다. 켈러허 사장은 “공급만 충분했다면 더 많이 팔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루 전인 28일 다시 연 설명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경쟁사인 도요타와 혼다, GM, 크라이슬러처럼 캐나다에 공장을 두면 공급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자의 의문에 켈러허 사장은 “지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지난 세월 현대차에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부르몽 악몽(惡夢)’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포드에서 일하다 1986년부터 현대차에 합류해 올해로 사장에 부임한 지 10년째를 맞는 켈러허 사장은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현대차는 1989년 캐나다 퀘벡 주에 있는 중소 도시 부르몽에 첫 해외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당시 현대차는 현지 코미디 프로그램의 우스개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싸구려 이미지’였다. 연간 12만5000대의 ‘쏘나타’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었지만 겨우 2만5000대만 만들어냈다. 결국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현대차 임직원들에게 부르몽은 해외진출 사상 최대 악몽이다.
현대차는 부르몽 악몽 이후 절치부심하며 10년 넘게 캐나다 시장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소비자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으로 현대차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지만,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켈러허 사장은 교수, 기자 등 자동차 전문가들에게서 현대차 브랜드의 약점을 파악하는 한편 고객들로부터 다양한 시승 경험을 수집했다. 이어 투자를 꺼리는 일부 자동차 딜러의 반대를 무릅쓰고 현대차 매장의 인테리어와 브랜드 이미지를 하나로 통일했다. 전시장에서 정비와 부품교체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도 추진했다. 특히 캐나다의 추운 겨울 날씨를 고려해 엘란트라와 같은 준중형 세단에도 열선 히트를 기본 옵션으로 제공한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 서서히 회복되던 판매량은 올해 들어 한 단계 도약했다.
켈러허 사장은 “현대차의 부르몽 악몽은 실패만은 아니었다”며 “강력한 품질경영과 더불어 브랜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교훈은 천만금을 주더라도 살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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