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칼럼]印 타타회장의 ‘혁신 DNA’가 부러운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7일 03시 00분


인도에선 10만 루피, 우리 돈 약 250만 원이면 4인 가족이 너끈히 탈 수 있는 승용차를 살 수 있다. 인도의 서민차 ‘나노’다. 타타자동차 회장인 라탄 타타는 2003년 인도 서민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인도 시내에서 4인 가족이 스쿠터 한 대에 올라타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초저가 자동차’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들에게 스쿠터만큼 싼 차를 만들어 주자는 생각이었다. 고객을 면밀히 관찰하고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가 주목하지 않은 소득 하위 80%, 즉 피라미드 하부(BOP·Bottom of the Pyramid)의 틈새시장을 포착한 혁신가의 혜안이었다.

타타 회장의 도전은 지금껏 순탄치 않다. 세계 자동차 전문가들은 그 값으론 기껏해야 ‘지붕과 문짝이 달린 스쿠터’나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비아냥댔다. 5년 후인 2008년 타타가 2기통 623cc에 30마력의 초저가 승용차인 나노를 10만 루피에 내놓자 분위기는 싹 달라졌다. 상상이 머릿속을 걸어 나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8월 한 달 출하된 나노는 1202대에 불과했다. 4월의 1만12대보다 88% 줄어든 것이다. 대기자만 1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잘나갔던 나노의 신세가 순식간에 초라해졌다. 전문가들은 인도 소비자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안전 문제가 나노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차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 문제가 제기된 데다 스쿠터보다 약간 더 돈을 내면 승용차를 살 수 있다는 마케팅 포인트도 인도 중산층의 반감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모처럼 ‘큰돈’을 들여 차를 장만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인도 소비자들은 나노를 구입할 때 회사 측이 의도했던 스쿠터보다, 우수한 품질의 글로벌 브랜드 소형차를 비교대상(Reference Point)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타타도 품질을 희생해 가격을 낮추는 식으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산 방식과 기술 혁신에 매달렸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정교한 마케팅으로 고객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서민차 나노의 날개가 완전히 꺾였다고 예단하진 말자. 혁신의 관점에서 보면 나노의 도전은 이제 전반전을 지났을 뿐이다. 타타가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회사의 역량은 더 강해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토대로 다른 BOP 시장으로 세력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점차 품질을 끌어올려 글로벌 브랜드가 장악한 고가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도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일도 아니다. 통일이 되면 당장 챙겨야 할 2000만 명 이상의 북녘 BOP 시장이 존재한다. 인도 소비자처럼 그들도 합리적인 가격에 꼭 필요한 품질의 제품을 원할 게 당연하다. 자칫 ‘아프라시아(아프리카+아시아)’의 BOP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글로벌 기업이 북녘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할지도 모른다.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시작한 한국 기업에 BOP 시장은 부담스러운 도전이다. 게다가 낯선 소비자와 시장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숱한 실험과 검증을 통한 긴 학습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타타 회장의 ‘혁신 DNA’가 부럽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안 될지도 모른다.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parky@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0호(2011년 10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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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 바꾸는 부동산

▼ 기업 부동산 포트폴리오 전략


부동산은 제조업이건 서비스업이건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일 보유 부동산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적기에 자산 재평가를 하지 않으면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주가도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이 주택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사 및 영업용 건물 등 사용 목적이 분명한 부동산을 보유할 때도 본연의 사용목적 이외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업 경영진이 축적하고 있어야 할 부동산 자산의 관리 및 운용 전략을 제시한다.

엉뚱한 M&A 피하려면…

▼ Harvard Business Review


기업 성과 개선, 혹은 장기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최고경영자(CEO)에게 인수합병(M&A)은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M&A가 실패하는 비율은 70∼90%에 이른다고 한다. 경영자가 M&A의 전략 목표에 부합하는 피인수 후보를 제대로 골라내지 못하고 현재의 운영 현황을 개선하기 위한 M&A와 자사의 성장 목표를 현저하게 변화시킬 M&A를 구분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 결과 너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기업을 인수하게 된다. 경영자들에게 피인수 대상 기업을 잘 고르고 적정한 가격을 책정하며 바람직한 통합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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