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학보사 기자들은 지역 현안으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동아일보는 학보사 기자들의 문제의식을 단서로 이들과 함께 현장 취재를 하는 특별기획 ‘학보사 기자와 함께’를 마련했다. 캠퍼스 밖 지역문제에 입체적으로 접근해 현실을 파악하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다. 기성 언론이 학보사 기자를 참여시켜 지역문제를 취재하는 것은 국내 처음이다. 첫 회로 영남대 학보사 ‘영대신문’에서 활동 중인 행정학과 3학년 이광우 씨가 제기한 대구약령시 문제를 함께 취재했다. 》
8일 오후 대구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한약방과 한의원 사이에 2층 커피전문점이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까지 약재상이 영업하던 곳이었다. 인근 건물에는 미용실도 새로 생겼다. 주인 김모 씨(43·여)는 “현대백화점이 들어서고 젊은 손님이 증가하면서 약령시 안에 옷가게, 레스토랑 등 여러 업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침체일로였던 주변 반월당 지하상가도 생기가 돌고 있다. 계산 오거리 방향의 메트로센터에는 유동인구가 크게 늘면서 20, 30대를 겨냥한 의류와 액세서리 매장이 들어섰다. 빈 자리가 많았던 60여 개 점포는 거의 채워졌다. 청바지 전문 매장을 운영하는 전철규 씨(44)는 “현대백화점 개점 이후 지하상가에 새로운 소비 바람이 불고 있다”며 “장사가 되니까 임대료도 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약령시 일대는 새바람
353년 전통을 이어온 대구약령시와 대형 유통업체의 ‘아름다운 공생’은 가능할까. 8월 현대백화점 개점 소식은 상권 잠식으로 인한 약령시 존폐 위기라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약령시뿐 아니라 바로 옆 염매시장과 지하상가 등이 활력을 찾으면서 일어난 분위기다. 이유는 한 가지. 유동인구가 늘면서 오후 6시 이후 인적이 드물던 약전골목과 인근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구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백화점 개점 이후 8, 9월 반월당역 이용객은 264만여 명. 지난해 199만여 명보다 32.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백화점 지하매장 약령시에 내줘 전통-현대 공생 ▼
혼수 떡으로 유명한 염매시장도 새 변화를 맞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백화점 입점 개점 이후 3일 정도는 깜짝 놀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며 “예년에 비해 늘어난 손님 덕분에 요즘 장사할 맛이 난다”고 즐거워했다.
○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공존
약령시보존회와 현대백화점은 유서 깊은 약령시 살리기에 힘을 모으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개점 전인 5월 약령시 축제에 예산을
지원하는 한편 백화점 내 지하매장 2곳도 약령시 제품 판매점으로 내줘 유통망 확보를 도왔다. 약령시보존회와는 매달 1회 정기모임을
열고 주변 상권과 유동인구 변화를 모니터링하면서 스쳐가지 않고 머무는 약령시가 되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다. 지난달 16∼25일
반월당을 주제로 축제를 개최한 것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약령시 한의학문화관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다양한 공연과 고객 사은행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는 평가다.
다음 달에는 약령시보존회와 현대백화점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백화점과 약령시 구매 고객들에게 무료 주차권을 제공하거나 제품 할인 혜택 등의
구체적인 상생 방안을 마련한다. 약령시는 전국 판로 개척을 위해 백화점 유통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김민수
현대백화점 판매기획팀 과장은 “백화점 쇼핑뿐 아니라 전통 약령시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에 다른 지역 고객을 이곳에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행정기관도 나서
대구시와 중구는 현대백화점 개점 이후 상권 변화 대응과 주변
환경을 활용하기 위해 약령시 한방특구(2004년 12월 지정) 활성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특히 시는 경북대 한방산업진흥원
대구테크노파크 대구한의대 약령시보존회와 함께 한방산업 경쟁력 강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까지 총 22억9800만 원을
투입한다.
중구는 증가한 유동 인구를 잡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중구 남성로 옛 이해영 정형외과 건물을
매입해 한방웰빙체험관으로 꾸미고 있다.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도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2014년까지 총 70억
원이 들어간다. 박동신 중구 전략경영실장은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공존 모델이 탄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이광우 영대신문 기자(영남대 행정학과 3학년) kwangwoo222@ynu.ac.kr ▼ 대구약령시의 역사 ▼
대구약령시(藥令市)는 ‘전국 최고(最古) 한약재 전통시장’ 정도로 설명하기 어려운 ‘맥(脈)’이 흐른다. 17세기 중엽 전국에는 서너 개의 한약재 전문시장이 형성됐지만 대구약령시는 조선 8도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인도 유럽에서도 한약재를 구입하러 올 정도로 번성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쓸 자금 조달과 연락 거점 역할을 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선생이 살았던 집도 대구약령시 근처에 있다.
353년 전인 1658년(효종 9년) 대구약령시가 처음 열린 곳은 지금 위치(대구 중구 남성로)에서 조금 떨어진 경상감영공원(대구 중구 포정동) 자리였다. 당시 한약재 수집 유통은 국가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경상도 감영(관찰사가 근무하는 관청) 옆에서 봄, 가을 약령시가 열렸다. “좋은 한약재라도 대구약령시에 나와야 진짜 약효가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1895년 8도 행정조직이 폐지되면서 경상감영도 사라져 1907년부터 약전골목으로 불리는 지금 위치에 장이 섰다.
1978년부터 약전골목 700여 m 양쪽에 늘어선 한방 관련 점포 180여 곳을 중심으로 약령시 부활 노력이 시작돼 매년 5월이면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열린다. 점포가 가장 많았을 때는 250여 곳에 이르렀으나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 “한약재 유통 넘어 식품사업 진출” ▼
“위기가 곧 기회, 대구약령시의 부활을 지켜봐 주세요.”
강영우 약령시보존회 이사장(48·사진)은 약령시가 자생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보고 있다. 한약재만 취급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감한다. 영리법인 ㈜대구약령시를 지난달 출범시킨 것은 생존을 위한 첫 단추였다.
―약령시 발전을 위한 여러 위원회 구성 계획을 밝혔는데….
“한약재직거래사업추진위원회 등 모두 4개의 위원회를 꾸렸다. 특히 정부에서 국산한약재 직거래사업에 30억 원을 배정하고 공모를 진행하는데 관련 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우리가 주도권을 가졌다고 판단한다. 이 사업은 주요 한약재 14개의 유통과 품질을 보증하는 것으로 약령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
―㈜대구약령시의 향후 사업 계획은….
“경북대가 한방산업 경쟁력강화사업 주관 기관이다. 약령시보존회와 함께 2014년까지 정부로부터 10억 원을 지원받아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브랜드 제품 개발이 가장 큰 목표다. 내년 5월까지 쌍화탕, 홍삼 진액 등 2개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올해 말까지 한약 관련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 ‘약령식품’을 설립해 약령시 상인들에게 골고루 이익이 돌아가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현대백화점 개점으로 일부에서는 대구약령시의 위기라는 말도 있다.
“백화점 개점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공동 발전을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약령시 쇠퇴 우려 취재해보니 딴판… 역시 답은 현장에” ▼
생각의 출발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300년이 넘는 대구약령시 바로 옆에 대형 백화점이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지역 언론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현대백화점 개점 이후 주변 교통난으로 약령시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실제 개점 초기 백화점 주변 달구벌대로는 매일 교통정체가 극심했다. 꽉 막힌 도로 탓에 약령시와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반월당 상권이 활발해지면서 인근 건물 임대료가 3.3m²(1평)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으로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약령시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몇몇 상인은 짐을 싸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백화점 개점이 전통 한약재 시장에 끼친 변화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런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실패 사례가 없어야 한다는 판단도 생겼다.
하지만 ‘현장’은 단조로운 시각에 머물렀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우려는 기대로 점차 바뀌었다. 현대백화점과 대구약령시 상인들은 상권 침해가 아니라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침체일로였던 대구약령시에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활기를 찾고 있는 모습은 나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역시 현장에 정답이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본 세상을 전부인 것처럼 믿는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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