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은 한국인에게 선악의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진 회사다. 1995년 한국이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상용화했을 당시 퀄컴은 휴대전화 핵심 부품인 CDMA 통신칩을 만들었다. 고마운 회사였다. 동시에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휴대전화를 한 대 팔 때마다 퀄컴은 비싼 로열티를 챙겨갔다. 그건 얄미워 보였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퀄컴 본사에서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폴 제이컵스 회장을 만났다. CDMA는 이제 종주국인 한국에서도 거의 쓰지 않는 통신기술이 됐지만 이 회사는 아직도 한국에 이율배반적인 존재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라이벌, 삼성전자와 애플 때문이다. 특허전쟁으로 맞붙은 두 회사는 모두 퀄컴의 고객이다.
그래서 제이컵스 회장에게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긴장이 점점 고조되지만 이는 해결의 신호”라고 말했다.
○ 특허는 발전을 위한 도구
제이컵스 회장은 본인이 45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공학박사다. 인터뷰가 진행된 그의 집무실 뒤에는 은판에 새긴 제이컵스 회장의 특허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애플과 같은 입장에 서서 누구보다 특허가 강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제이컵스 회장은 “특허는 기본적으로 발명가가 자신의 생각을 세계에 알리게 하려는 제도”라면서 “온 세상이 발명가의 생각을 발판 삼아 이 바탕 위에서 더 나은 걸 창조하도록 하려는 게 특허제도의 존재 이유이다. 특허가 다른 사람의 발명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사업을 중단시키려고 들면 결국 상대방도 온 힘을 다해 극단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특허분쟁은 애플이 시작했기 때문에 제이컵스 회장의 얘기가 의미 있게 들렸다.
하지만 제이컵스 회장은 “최근 삼성과 애플 사이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지만 이는 합의를 위한 필수적인 단계”라고 설명했다. 퀄컴은 다양한 통신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세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부터 라이선스 사용료를 받는 회사다. 동시에 2007년 이후 브로드컴 노키아 등 통신 분야 기업들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해 고생하기도 했다. 특허분쟁에 관해서는 전문가인 셈이다.
제이컵스 회장은 “계속해서 이 산업에 존재하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들은 ‘특허괴물’과는 다르다”며 “이 회사들도 지금의 긴장 고조를 통해 머잖아 결국 합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만 두 회사 모두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애플이 최근 “애플은 퀄컴의 라이선스를 썼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이컵스 회장은 애플의 주장에 앞서 진행됐던 이날 인터뷰에서 “퀄컴은 라이선스를 빌려준 회사가 법적인 문제 없이 라이선스를 최대한 사용하도록 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보다 애플에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반도체 회사
제이컵스 회장은 퀄컴의 변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강조였다. 최근 이 회사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들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스냅드래건’이라 불리는 제품이 대표적인데, 기존에는 나뉘어 있던 그래픽 처리장치와 복잡한 계산을 처리하는 프로세서, 통신을 담당하는 반도체 등을 하나의 칩셋으로 통합한 제품이다. 이렇게 스마트폰 사업에 깊이 관여하면서 퀄컴은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거 늘렸다. 이는 소프트웨어 회사와 경쟁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제이컵스 회장은 “퀄컴이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건 우리의 파트너인 소프트웨어 업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운영체제(OS) 회사와 OS를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체가 퀄컴 칩에서 자신의 소프트웨어 성능을 더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게 목적”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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