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로 선진국 대형은행들이 앞다퉈 대규모 인력 감축을 실시하는 가운데 국내 은행권에도 거센 구조조정 바람이 불 조짐이 보인다. 위기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려면 미리 긴축경영을 실시해야 한다는 외부 요인에다 개별 은행의 내부 요인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SC제일은행은 6일 상무급 이상 임원 96명, 본부장급 이상 직원 60명 등 총 150여 명을 본사로 불러 자발적 명예퇴직 신청을 종용했다. 외부 위기에 맞서 조직의 군살을 빼고 호봉 체계를 간소화한다는 이유였다. SC제일은행이 설립된 2005년 이후 임원 명예퇴직은 이번이 처음인 데다 국내 은행권에서도 임원 전원을 대상으로 명퇴 신청을 받은 사례는 사실상 없다. SC제일은행의 한 임원은 “후배들을 위해 명예롭게 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준다지만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며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명예퇴직 바람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은 매년 말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발적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왔다.
HSBC은행 직원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산은금융지주가 지점이 60개에 불과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HSBC의 국내 지점 11개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금융은 인수합병(M&A) 방식이 아니라 자산부채인수(P&A)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P&A는 M&A와 달리 피인수 회사 직원의 고용 승계 의무가 없다. 이에 따라 830명에 이르는 HSBC 직원 중 25%가량을 차지하는 약 200명의 소매금융 분야 직원이 좌불안석이다. HSBC의 한 직원은 “외국계 은행 직원들은 상무 이상의 고위 직급이 많은 데다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이 완전히 다른 국책은행인 산은금융에서 마땅한 역할을 찾기도 힘들다”며 “글로벌 재정위기 여파로 이직이 쉬운 것도 아니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 중에서는 합병이 가시화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내년 초 카드 분사를 앞둔 우리은행 직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미 8월 말에 올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378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하나은행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은 2008년 초 이후 3년 만이어서 금융계의 각별한 관심을 끈 바 있다. 외환은행 노조 측은 “하나금융이 대규모 차입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만큼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 절감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며 우려한다. 실제 하나금융은 인원 감축은 최소화하겠지만 중복 점포 및 인원의 정리는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지점(1008개) 및 직원 수(1만6606명)가 모두 KB국민은행에 이은 국내 2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카드 분사로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은행에서 카드사로 이동해야 하는 데다 다른 은행보다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직원이 많아 어떤 식으로든 인력을 정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우리은행 직원은 250명이며 내년 240명, 2013년 400명이 더 늘어난다. 이 직원들은 대부분 지점장급 이상이다.
작년 말 은행권 사상 최대 규모인 3244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한 KB국민은행도 인력 조정의 무풍지대는 아니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말 창립 3주년 기념식에서 “KB금융이 4대 금융지주 중 기업의 생산성을 측정하는 ‘인건비 대비 영업이익 배수’가 가장 낮다”고 말했다. 민병덕 KB국민은행장도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도 다른 은행에 비해 직원 수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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