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울산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 공장에서 열린 석유화학 공장에 VIP 두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과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광물부 장관이 공장 확장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알나이미 장관은 ‘세계 석유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인물. 하지만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인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현 이사회 멤버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참석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국내 특정 기업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에쓰오일의 파라자일렌 공장이 1조3000억 원을 들인 세계 최대 규모라고는 하지만 공장 하나 짓는 데 수조 원이 드는 게 예사인 정유업계의 속성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이 때문에 행사장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알나이미 장관을 만나기 위해 울산에 내려왔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 한국을 사랑하는 ‘석유 대통령’ 알나이미
알나이미 장관은 12세 때인 1947년 아람코에 사환으로 입사해 비(非)왕족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 회사의 이사와 CEO를 지냈다. 아람코는 연 매출액이 23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으로, 사우디 정부 재정수입의 90% 이상을 충당하고 있어 사실상 정부나 다름없는 회사다.
알나이미 장관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5년 임기의 석유광물부 장관을 4차례나 연임하고 있다. 산유국의 특성상 석유광물부 장관은 사우디 국왕 다음의 2인자에 해당하는 자리로 국정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알나이미 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걸프협력이사회(GCC)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 ‘세계 석유 대통령’으로 불린다.
알나이미 장관은 아람코 CEO였던 1991년 에쓰오일에 4억 달러를 투자한 이래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중동의 대표적 친한파(親韓派) 인사. 아람코를 통해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사우디 학생들을 한국으로 유학 보내는 등 양국 교류에 크게 공헌한 점이 인정돼 2008년 4월 서울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이날 준공식에서 “에쓰오일은 산유국과 소비국이 맺은 이상적인 경제 협력모델로, 아람코가 세계 각국에서 벌인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말했다.
○ 이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울산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뒤 에쓰오일의 초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공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알나이미 장관을 만나기 위해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를 준공식 일정에 맞췄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 대통령은 축사에서 알나이미 장관을 “아람코 CEO 시절, 사우디 역사상 최초의 대한민국에 대한 대형 투자를 결정한 인물”이라고 소개하며 치켜세웠다. 이어 “(에쓰오일 외에도) 한국의 다른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주길 권유한다”고 아람코 측에 당부했다.
이에 대해 알나이미 장관은 서툰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 감사합니다”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청와대를 방문해 이 대통령을 예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에쓰오일 공장 방문은 알나이미 장관과의 관계 외에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 말 에쓰오일 온산 제1공장의 토목공사를 맡았던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아람코가 도움을 준 데 대한 보답의 성격도 있다. 아람코 측 인사인 아흐메드 에이 수베이 에쓰오일 대표는 에쓰오일의 2대주주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도움을 청하자 GCC 국가들에 평창 지지를 호소하며 올림픽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에쓰오일은 이날 공장 확장을 끝냄으로써 기존에 연간 74만 t 수준이던 파라자일렌 생산능력을 170만 t으로 늘렸다. 이는 단일공장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 합성섬유 폴리에스테르의 원료인 파라자일렌 170만 t은 34억 벌의 옷을 만들 수 있는 물량이다. 이번 공장 확장을 통해 에쓰오일은 세계 파라자일렌의 80%를 소비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최대 공급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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