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이 은행권의 고배당 정책에 강력한 제동을 걸면서 신한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이 잇달아 고배당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계 일각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수수료 인하와 달리 전적으로 경영 의사결정인 배당까지 정부가 간섭하는 건 지나친 관치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등 배당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 금융위 “충당금 비율 높여 배당 억제”
금융위원회는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대손충당금이나 준비금을 지금보다 많이 쌓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손충당금과 준비금은 대출채권이 부실해질 때를 대비해 은행 내부에 쌓아두는 자금. 비용 성격인 충당금과 준비금 규모가 늘면 순이익이 줄어 배당 재원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을 은행 내규에 반영하도록 권고하는 한편 대손준비금 적립 기준과 명시된 감독규정도 개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지주의 임원은 “낮은 배당으로 적정 주가가 유지되지 않으면 해당 업체가 채권을 발행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 조달금리가 높아져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른 지주회사의 IR담당자는 “국내 은행에 투자하는 외국인투자가들은 선진국 은행보다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하는데 최근 몇 년간 국내 은행권의 경쟁이 심화되고, 주가도 크게 오르지 않아 배당이라도 적정하게 해주지 않으면 이들을 붙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금융권 배당, 제조업체보다 높아 문제
감독당국이 금융권의 배당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주요 금융회사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현금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반 상장회사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회사의 배당성향 평균은 25.62%였다. KB금융지주가 46.5%로 가장 높았고 신한(24.6%), 우리(16.9%), 하나(14.5%) 등이 뒤따랐다. 유가증권시장의 상장회사 평균치인 16.25%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은 비율이다.
주요 제조업체와 비교해 봐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배당성향은 각각 11.3%, 7.8%였다. 특히 금융지주회사들이 거둔 수익은 내국인을 상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번 돈이 대부분이어서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제조업체의 배당 수준보다 높다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허가를 얻어 사업을 영위하는 은행업은 독과점의 혜택을 누릴 여지가 많고,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업체보다 높은 배당성향을 지니는 게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제조업은 물건을 파는 순간 대부분의 비용이 정산 가능한 반면 금융업은 판매 후에도 다양한 애프터서비스 비용이 발생하므로 미래 비용에 대비한 유보액을 제조업보다 더 많이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권의 배당성향은 해외 유명 은행보다는 낮은 편이다. 국제 은행 통계사이트인 뱅크스코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JP모건체이스(131%), HSBC(42%), 도이체방크(30%) 등 선진국 대형 은행의 배당성향은 모두 30%를 웃돌았다.
○ 실적 향상이 진정한 투자 유인
전문가들은 최근의 배당 논란에 대해 당국이 지나치게 관여하는 측면은 있지만 국내 은행들이 고배당보다는 장기 실적 향상을 통해 투자자와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배당을 적게 하는 게 무조건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의 수와 기업의 전체 이익 중 배당금으로 지급되는 비중이 꾸준히 줄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업 활동에서 창출한 자금에서 투자에 사용한 자금을 빼고 남는 여유 자금인 잉여현금흐름의 범위 내에서 배당을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강석훈 교수는 “당국이 무조건 ‘충당금을 더 쌓으라’는 식으로 지시하기보다 이익을 국내 은행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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