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털웃음 잦아진 정몽구회장… 현대차 상반기 순이익 삼성 제치고 1위 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6일 03시 00분


‘왕자의 난’ 이후 11년… ‘왕회장의 현대’ 재현 주목

올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성장은 두드러졌다. 올 3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10주기 추모사진전에서 아버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 정몽구 회장. 동아일보DB
올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성장은 두드러졌다. 올 3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10주기 추모사진전에서 아버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 정몽구 회장. 동아일보DB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막혔던) 속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17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네이선 딜 미국 조지아 주지사 환영만찬에서였다. 조지아 주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다. 평소 기자들과 얘기를 즐겨 하지 않는 정 회장이지만 이날은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물어볼 거 없냐”고 말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요즘 정 회장의 얼굴이 부쩍 밝아진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사업의 눈부신 성장을 발판으로 올해 상반기(1∼6월) 연결재무제표 작성 대상 상장 계열사(금융사 제외) 순이익에서 9조1679억 원으로 부동의 1위였던 삼성그룹(8조1036억 원)을 앞질렀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이끌 때 삼성을 누른 이후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상장 계열사 기준이긴 하지만 삼성을 앞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현대차그룹은 올해 현대건설과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며 그룹 외연도 넓혀가고 있다. 2000년 계열분리 당시 자동차밖에 없었던 현대차그룹의 사업군에는 이제 건설, 철강, 금융이 포함됐다. ‘왕회장(정 명예회장)의 현대’를 재현하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빨라짐에 따라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왕자의 난’ 이후 굳어졌던 ‘삼성=재계 1위’의 공식을 깰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올해는 정 명예회장의 10주기가 되는 해다.

○ ‘아버지의 방’ 입성, 영광도 재현

2000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인 ‘왕자의 난’ 이후 정 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등 자동차 관련 계열사 10개만 가지고 독립했다. 주위에선 ‘사실상 밀려났다’는 시각이 많았다. 그룹 주도권은 건설 전자 상선 금융 등 26개 계열사를 장악한 동생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분리 직후인 2001년 재계 순위는 현대그룹이 2위, 현대차그룹이 5위였다.

당시 재계에서는 “왕 회장이 이뤘던 현대의 영광은 자동차밖에 없는 형 대신 동생이 이어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10년 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세계 5위권의 자동차 기업으로 키워냈다. 세계 자동차 기업 중 유일하게 완성차(현대차, 기아차)-부품(현대모비스)-철강(현대제철)이라는 수직 계열화까지 완성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일관제철소 건설도 마무리 지었다.

한발 더 나아가 정 회장은 올해 현대건설을 인수해 자신이 ‘현대가(家)의 적통’임을 공고히 했다.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 비어 있던 서울 종로구 원서동 현대계동사옥 15층 회장 집무실도 그의 차지가 됐다. 당시 정 회장은 “감개무량하다”는 짧지만 인상적인 소감을 통해 ‘장자(長子)의 귀환’을 알렸다.

실제로 재계 2위까지 뛰어오른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에 순이익 규모에서 삼성을 제쳤다. ‘왕자의 난’ 직전까지만 해도 자산총액 기준 재계 1위는 현대그룹이었지만 그룹이 쪼개지면서 2000년대 들어 그 자리는 삼성그룹의 차지가 됐다.

○ 자동차-철강-건설-금융, 4대 축

현대건설 인수가 현대가의 적통을 잇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면 21일 확정된 녹십자생명 인수는 미래의 성장을 내다본 선택이었다. 녹십자생명을 통해 현대차그룹은 카드(현대카드), 할부금융(현대캐피탈), 증권(HMC투자증권)에 보험까지 포함해 은행을 제외한 금융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그룹의 경영이 자동차, 철강, 건설, 금융의 4대 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녹십자생명은 23개 생보사 중 17위권에 불과하지만 15만 명에 이르는 현대차그룹 임직원과 현대차 계열사들과의 공동 마케팅을 통해 선두권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보험업계의 분석이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지만 현대차그룹은 4대 축 이외의 분야로의 진출은 최대한 자제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최근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말해 달라는 주문에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와 관련이 없는 분야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녹십자생명 인수도 자동차 보험이라는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왕자의 난 이전의 현대그룹은 전자, 중공업, 자동차, 금융, 백화점 등 사실상 모든 분야에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다.

정 회장은 상반기 순이익에서 삼성그룹을 앞질렀다는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는 “평소 ‘자동차 판매량 순위에 연연하지 말라’는 정 회장의 지시와 같은 맥락”이라며 “품질 강조로 현대차가 도약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대차그룹은 삼성의 미래전략실과 같은 별도의 ‘그룹 컨트롤타워’는 운영하지 않을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주재하는 사장단 회의에서 경영 방향을 결정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올해 재계에서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바라보는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단연 눈에 띈다”며 “정 회장의 뚝심이 빛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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