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정부 믿고 지주회사 전환한 SK그룹, 돌아온건 ‘과징금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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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경제부 문병기 기자
경제부 문병기 기자
대기업 총수일가의 ‘황제경영’을 막기 위해 추진된 정부의 지주회사 정책이 위기에 처했다.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반대로 장기간 국회에서 표류하면서 정부 시책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SK그룹이 막대한 과징금을 물게 됐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1일 공정거래법상 자회사의 금융회사 지배 금지 규정을 위반한 SK네트웍스에 대해 주식처분 명령과 함께 과징금 50억85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SK그룹 계열 종합상사인 SK네트웍스는 SK증권 지분 22.71%를 소유한 지배회사다. SK그룹이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자회사인 SK네트웍스는 공정거래법의 금융자회사 보유금지 조항에 따라 금융회사인 SK증권을 유예기간인 4년 내에 매각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하기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 허용을 약속하면서 2008년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던 것. SK그룹은 정부의 약속을 믿고 SK증권 지분 매각을 미루며 법 통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 대기업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을 놓고 ‘대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린 공정거래법이 3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SK그룹은 과징금을 내게 됐다.

SK그룹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수용했지만 속이 쓰리다. 당장 SK증권을 매각하기도 마땅치 않고 무작정 공정거래법 통과를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1년 내 SK증권 지분 매각을 못하면 검찰 고발을 피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더욱 난감한 표정이다. SK그룹에 대한 과징금 부과로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책의 ‘약발’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실제로 공정거래법 통과가 지연되면서 지주회사 전환은 최근 크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대기업 주력 계열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한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2년간 전무한 실정이다.

더욱이 공정거래법 통과가 계속 미뤄지면 내년 하반기 금융자회사 소유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두산과 하이트 등 5개 회사도 줄줄이 과징금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올 4월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지적대로 정책의 생명은 신뢰성과 안정성에 있다. ‘대기업 특혜’가 우려된다면 정치권의 합의로 풀면 될 일이다. 상정된 법안을 수년간 내버려둬서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른 기업만 골병들게 만드는 ‘의사봉 권력’의 남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경제부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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