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체이스’는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금융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자산규모가 무려 2조3000억 달러(약 2400조 원)에 이르고 이름을 모르는 금융인이 없다. JP모건 체이스가 금융제국이 되도록 첫걸음을 떼게 한 이가 바로 존 피어폰트 모건이다. 모건은 1907년 미국에 몰아닥친 공황을 혼자 힘으로 막아낸 ‘금융 황제’였다. 모건은 한창 시절 기업합병을 특기로 삼았다. 그가 손댄 철도, 전기, 전화업 등에서는 군소업체들이 대형업체로 탈바꿈했다. 철강업에서도 US스틸이라는 공룡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특히 모건은 합병 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모건을 시기하던 이들은 합병의 목적이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수수료였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미국 금융시장을 쥐고 흔드는 힘을 지녔으니 수수료를 정하고 거둬들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금융시대인 지금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주로 활동했던 모건의 사례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당시와 지금이 시대는 달라도 덩치를 키워 편하게 수익을 얻는 측면에서는 사정이 비슷하다. 국내 은행권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형화의 길에 들어섰다. ‘조 상 제 한 서’로 줄여 부르던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거대 금융지주회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곧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치면 우리금융 KB금융 신한금융지주가 쥐락펴락하던 국내 금융시장에 하나금융지주가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2001년 말 국내 금융업에서 금융지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50%로 부쩍 커졌다.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가 차지하는 몫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국내 첫 금융지주가 출범한 2001년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금융선진국들의 은행과 어깨를 견줄 만한 국내 은행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덩치는 커졌지만 활동무대는 국내라는 동네 골목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좁은 영업지역에 지점 수가 1000개 정도에 이르면 수수료라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도 쉽다. 촘촘한 그물을 넓게 펼쳐놓고 어린 물고기까지 잡아들이는 방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2004년에도 은행권의 수수료 장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수수료가 고객 입장에서 설득력 있게 책정됐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 후 6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동네 조무래기들의 푼돈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싸우는 모양새가 여전할 뿐이다. 원래 몸집을 키우라고 한 이유는 글로벌 무대에 나가 한국 금융의 위상을 높이라는 데 있었건만.
1900년대 초 US스틸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기업이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표현을 실었다. ‘신은 기원전 4004년 세상을 창조했고 세상은 1901년 모건에 의해 재편됐다.’ 모건은 천재적인 수완으로 수수료를 챙겼다는 비판도 듣지만 한 나라의 산업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바꿔놓았다. 국내 은행들도 세계무대에서 이런 역할을 한다면 그들이 거둬가는 수수료가 그리 아까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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