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후륜구동 제네시스-에쿠스, 美 동부서 인기없는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8일 03시 00분


미국 동부지역은 겨울이 길고 추우며 눈도 많이 온다. 지난달 29일에는 동부지역에 폭설이 내려 12명이 숨지고 220만 가구가 정전되기도 했다. 기자가 거주하고 있는 코네티컷 주 노스헤이번에도 30cm의 눈이 내렸고, 인근 하트퍼드에는 무려 52cm가 쏟아져 대부분의 지역이 정전됐으며 학교는 열흘 정도 휴교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전깃줄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대중교통수단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이 아니라 ‘생존필수품’이고, 특히 이런 폭설이 내리면 4륜구동 자동차가 절실해진다. 반대로 눈길에서 취약한 후륜구동 자동차는 생존의 측면에서는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부지역에는 후륜구동이 주력인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의 비율이 눈이 오지 않는 서부보다 낮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4륜구동 모델이다.

럭셔리 브랜드 모델 중에선 벤츠 ‘C300 4MATIC’ 모델이 가장 많이 보이는데 동부지역 백인 중년 여성의 로망이라고 한다. 멋진 브랜드에다 겨울에도 다닐 수 있고 가격이 4만 달러대로 너무 비싸지도 않으며 크기도 혼자 타고 다니기 적당해서다.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후륜구동이 주력인 렉서스(도요타)보다는 전륜구동 모델인 아큐라(혼다)가 동부지역에서 많이 보인다.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미국 서부에 렉서스가 많은 것과는 반대다. 렉서스도 4륜구동 세단이 있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스바루 브랜드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떨어지지만 동급 4륜구동 중에선 성능이 괜찮은 편이고, 기계적인 신뢰성이 높으면서 가격이 합리적이어서다.

현대자동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최근 크게 높아지면서 동부지역에서 ‘쏘나타’ ‘아반떼’는 자주 보이지만 후륜구동인 ‘제네시스’와 ‘에쿠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동부지역에서 1만 km를 넘게 운전했지만 제네시스는 10여 차례, 에쿠스는 3차례만 도로에서 마주쳤을 뿐이다. 실제로 동부지역의 한 딜러사의 경우 올해 제네시스를 5대밖에 판매하지 못했고 에쿠스 판매실적은 없다고 했다. 가격이 높은 편인 데다 후륜구동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직원들의 대답이었다.

이처럼 미국에선 기후에 따라 자동차에 대한 기호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국 자동차 브랜드가 미국 전역에서 고른 인기를 누리고, 미국인의 삶과 함께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얻으려면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4륜구동 세단과 컨버터블, 중형 쿠페 등 다양한 형태의 모델을 갖춰야 할 시기가 왔다. 최근 만난 미국인 자동차담당 기자가 “컨버터블이 없는 자동차회사는 반쪽짜리 회사”라고 한 말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미국 노스헤이번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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