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의류 전문 인터넷쇼핑몰 ‘퍼니러브’를 운영하는 원명호 씨(35)는 대학시절 ‘잘나가던’ 응원단장이었다. 전국 대학생 응원동아리연합 회장도 맡았다. 학창시절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프로 세계에 입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국내 프로구단은 미국 NBA나 NHL처럼 입장료만으로 운영할 수 없는 영세한 규모였다. 응원단장은 ‘계약직’으로만 뽑았고, 경력에 따른 전문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원 씨는 “10년 일한 응원단장과 1년 일한 응원단장이 받는 돈이 똑같은 상황에서 미래를 고민해야 했다”며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돈에 얽매인다는 것 자체가 비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적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선택해야 했다.
남성용 화장품 전문 쇼핑몰 ‘포부’를 운영 중인 김무영 대표(44)도 무기력한 직장인 대신 사장의 길을 택했다. 김 대표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후 미국의 듀폰 등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4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국내에서 꿈을 펼치겠다며 한국의 한 생명공학기기 전문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다. 김 대표는 “모든 일이 대표이사의 머리로 결정되는 한국에서, 개인의 창의력은 설 자리가 없었다”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일을 잘해도 성장할 수 없을 것 같아 회사를 뛰쳐나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에게 창업은 탈출이었다.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생활을 그만두며 ‘생계수단’으로 인터넷쇼핑몰을 선택했다. 절박함이 있었기에 지금은 한 달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러나 절박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원 씨는 “절박함은 모두에게 있다”고 전제한 뒤 “판매하려는 품목에 대한 시장조사, 좋은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 등 전문성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 전문가 될 자신 없다면 시작도 마라
실제로 본보가 만난 성공한 인터넷쇼핑몰 사장들은 판매하려는 품목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거나, 이미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다가 창업으로 방향을 튼 사람들이었다. 중국음식점의 인테리어만을 전문으로 해 1년에 5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차이나 데코’의 한덕규 대표(40)는 원래 LG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컴퓨터 고치는 일을 했다. 한 대표는 “중국음식점 인테리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만으로는 경쟁사를 이길 수 없었다”면서 “직접 전국 100여 개의 중국음식점을 돌면서 단순히 인테리어 관련 제품을 공급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실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허남수 씨(38)는 서울 홍익대 앞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리스트였다. 공연도 했고, 음반도 냈지만 돈은 벌지 못했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떠났다. 2006년의 일이다. ‘나도 돈을 벌어보자’며 독하게 맘을 먹었다. 그러고는 악기 도매상이 모인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의 한 악기 도매상에 취업했다. 그는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더니 월급이 120만 원이 됐다. 그러나 가정을 이룰 수도 미래를 꿈꾸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 대신 2년 동안 이 가게에서 일하며 악기 수입상 및 소매상과 네트워크를 쌓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까지 음악만 했던 그였다. 좋은 악기를 보는 눈은 자신 있었다. 2008년 9월 악기 전문 쇼핑몰 ‘뮤직메카’를 창업할 당시 그의 통장엔 딱 250만 원이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통장에는 당시 돈의 100배인 2억5000만 원이 매달 들어온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대기업이 결코 진입할 수 없는 ‘틈새의 틈새’를 겨냥한 이들도 있다. 패션 요가운동복을 판매하는 ‘천상여우’를 운영하는 최인찬 씨(31)가 대표 사례다.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지금 원단 제작부터 디자인, 생산 및 판매까지 전 공정을 자체 해결한다. 이 쇼핑몰의 제품만 전담 생산하는 곳이 2개나 있을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 10곳 중 1곳만 6개월 이상 생존
이 같은 노력 없이 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철저하게 ‘쓴맛’을 경험해야 했다. 남성 트레이닝복 인터넷쇼핑몰 ‘포맨즈’를 운영하는 김재홍 씨(36)는 6년 전에 2억 원을 날렸다. 아무 생각 없이 사업을 키운 게 화근이었다. 김 씨는 중국에서 옷을 사다 한국에서 팔았다. 장사가 잘됐다. 그래서 덜컥 2억 원을 투자해 대형 인터넷쇼핑몰을 열었다. 상품도 의류가 아닌 중국제 생활잡화 150여 종으로 늘려 잡았다. 무료로 뿌린 사은품만 5만 개에, 서울 지하철 광고까지 했다. 딱 1년 만에 회사는 문을 닫았다.
김 씨는 “잡화가 돈이 된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만 믿고 무턱대고 사업을 시작했던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막상 사업을 크게 벌이니 인터넷쇼핑몰을 제작하는 비용만 5000만 원이 들었다. 여기에 판매 물량 선수금, 카드 결제 금액을 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현금, 당장 손님을 끌기 위한 광고비 등 돈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에 대한 대비는 미처 못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악순환에 빠졌다. 김 씨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건 사업을 한 차례 완전히 정리한 뒤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해서 다시 시작한 덕분이었다.
2005년부터 한우 전문 인터넷 쇼핑몰인 ‘A마을’을 운영 중인 김모 대표(56)는 한우로 유명한 고장에서 태어났다. 한우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한우가 친숙해서 망설임 없이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그는 “도매업자가 1등급이라며 팔았던 제품을 믿고 소비자에게 팔았다가, 고객 항의 때문에 질이 낮은 한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며 “사업은 고사하고 전화로 욕을 해대는 고객들 때문에 전화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전자결제 대행업체 이니시스에 따르면 매년 인터넷쇼핑몰 창업자 가운데 약 3만 명이 이 회사의 전자결제시스템 이용계약을 새로 맺는다. 소비자에게서 돈을 받아 보관했다가 판매자가 물건을 배달한 뒤 그때 이 돈을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이 가운데 6개월 뒤에도 이 전자결제시스템을 계속 쓰는 인터넷 쇼핑몰은 약 3000개에 불과하다. 10곳 중 9곳이 반년 만에 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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