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은 올 하반기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 지난해에만 120명을 채용한 이 회사는 올 상반기에 50여 명을 채용했을 뿐이다. 기존 영업사원들에게는 자신이 맡은 분야 외의 품목에 대해서도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영업인력이 줄었을 때를 대비해 한 사람이 ‘멀티태스킹’을 해낼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동아제약은 생산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계약생산대행(CMO) 업체를 통해 일부 약품을 위탁생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내년 4월부터 특허가 만료된 지 1년이 지난 약품 값을 53.55% 낮추는 내용의 약가 인하 대책을 일괄 시행키로 한 데 따른 고육책이다. 동아제약뿐만 아니라 다른 제약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제약사가 약가 인하에 대비해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고 있다”며 “매출액 급감이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어서 제약사들이 원가절감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5위권 내에 드는 메이저 제약업체 A사는 이달부터 연구소와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별도 수당 없이 ‘30분 일 더하기’에 들어갔다. 야근수당이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A사의 경영진은 구매 과정에서 원가를 10% 낮추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제약업계는 상대적으로 영업사원이 많은 A사가 감원에 나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계 제약사들도 약가 인하의 칼날을 피할 순 없다. 프랑스계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 아벤티스는 한국시장에서 아예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에 최근 시달렸다. 내부 직원들도 철수설의 진위를 묻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 따로 공장을 두고 있지 않지만 400명의 영업·마케팅 인력과 별도로 본사가 직접 관할하는 40여 명의 연구개발(R&D)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철수설의 배경에는 사노피가 지난주와 이번 주까지 2주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사실이 영향을 끼쳤다. 약가 인하를 앞두고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외국계 제약사 가운데 사노피가 처음이다. 사노피 관계자는 “약가 인하에 따른 어려움을 부풀린 낭설로 철수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글로벌 제약사들은 정부가 약가 인하를 강행한다면 한국에서 R&D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경고하고 있다. 국내 외국계 제약사들의 모임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이동수 회장(한국화이자제약 대표)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R&D는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나라에서 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약가 인하를 강행해 어려움을 겪으면 계획된 한국 내 R&D 투자를 다른 나라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 정상화에 동의하지만 약가 인하의 폭과 방법이 상식을 뛰어넘는다”며 “정부가 가장 만만한 상대인 제약사들에 너무 가혹한 조건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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