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설명회(IR)는 유리 포장지로 회사를 포장하는 업무입니다. 투명성과 신뢰가 없으면 유리가 깨지고 맙니다.”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아시아의 최고 IR 담당자로 뽑힌 류승헌 신한금융지주 IR팀 부장이 내린 ‘좋은 IR의 정의’다. 1989년 신한은행 입행 후 2001년부터 신한의 IR팀을 이끌고 있는 류 부장은 지난달 세계적인 금융투자전문지인 미국의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II·Institutional Investor)로부터 최고 IR 담당자(best IR professionals)로 뽑혔다. II는 아시아의 50여 개 금융회사에 소속된 수백 명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운용담당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IR팀의 신뢰성과 정직성, 해당 산업에 대한 지식, 질문에 대한 답변의 깊이 및 질적 수준, 재무정보 및 공시자료의 투명도 등 6개 부문을 평가해 베스트 IR 담당자를 선정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아니라 주식을 직접 사고, 이를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 1위로 뽑았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짐작할 수 있다.
최고 IR 담당자로 뽑힌 비결을 묻자 ‘회사의 재무제표를 달달 외워서 시시콜콜한 숫자를 알려주기보다 투자자의 감성에 호소한 IR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류 부장은 “대부분의 투자자는 IR 담당자 못지않게 해당 회사나 업황에 대한 정보가 많다”며 “2003년 카드대란 직전 한국 내부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 문제가 예상외로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실제 그 의견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을 붙잡고 ‘우리 회사의 실적이 좋다’는 말을 되풀이해봤자 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이 회사는 이런 점에서 투자할 만한 가치와 차별성이 있는 회사’라는 점을 각인시켜 줘야 한다”고 말했다.
류 부장은 소로스펀드의 20대 펀드매니저와 나눈 대화를 예로 들었다. 회사 지배구조나 향후 투자계획 등을 주로 묻는 다른 매니저들과 달리 갓 대학을 졸업한 그 매니저는 류 부장을 만나자마자 대뜸 ‘내가 왜 신한의 주식을 사야 하느냐’고 물었다. 열정이라고 답하자 “열정 없는 회사도 있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류 부장은 “20년 전 신한은행이 갓 출범한 소형 은행일 때 집 근처에 신한 지점이 새로 생겼다. 해당 지점 직원들의 친절한 태도에 반해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후 당시 대형 은행들을 놔두고 신한에 입사했다. 결국 그 회사가 한국의 최고 은행이 됐는데 전 직원의 열정이 없었으면 가능했겠느냐”고 답했다. 이 대답에 만족한 매니저는 이후 신한 주식을 매수했다.
류 부장은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때로는 이를 감추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3개월마다 실적 발표로 모든 게 낱낱이 드러나는데 유효기간 3개월짜리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며 “유리 포장지로 가릴 수 있는 단점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적이나 향후 사업계획에 관해 투자자들로 하여금 높은 기대치를 갖도록 했다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의 후폭풍은 엄청나다”며 “차라리 ‘회사에 이런 일이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곧 극복 가능하다’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는 게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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