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치킨집이나 차려야지”라거나 “나도 카페나 해 볼까”라는 말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견기업들이 치킨, 떡볶이, 빵집, 카페 분야에 잇달아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보일러 회사와 가스 회사가 카페를 차리고 리조트 회사가 떡볶이와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매출 규모 1조 원에 이르는 중견기업들이 자신들의 핵심역량에 기반을 둔 신성장 사업을 하기보다는 손쉬운 외식업에 줄줄이 뛰어들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영업기반을 흔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옛 뉴욕제과 옆 골목의 떡볶이 전문점 ‘베거백’은 대명그룹 계열사인 대명코퍼레이션에서 하는 가게다. 대명그룹은 대명리조트와 비발디파크를 보유해 국내 리조트산업의 간판주자로 꼽힌다. 2009년 문을 연 베거백은 ‘고추장카레 떡볶이’ 등 퓨전 떡볶이를 판다. 대명은 치킨전문점인 ‘스토리런즈’도 시작했다. 스토리런즈 매장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경기 성남시 분당과 군포시 산본에 있는데 앞으로 치킨 전문 프랜차이즈로 확대할 계획이다.
카페도 중견기업이 선호하는 아이템이다. 서울 중구 명동 눈스퀘어 6층의 ‘닥터로빈’은 귀뚜라미그룹에서 하는 카페형 레스토랑이다. 그룹 전체 매출이 9000억 원에 이르는 귀뚜라미그룹은 귀뚜라미보일러를 중심으로 50여 년간 냉난방 시스템 사업을 해왔다. 2006년 문을 연 닥터로빈은 귀뚜라미그룹의 첫 외식사업체로 현재 7개 직영점이 있다.
서울도시가스로 출발한 SCG그룹 김영민 회장도 카페 사업에 관심이 많다. 김 회장은 자신의 돈으로 2년 전 서울 양천구 목2동 시장 안에 베이커리형 카페 ‘타스’ 1호점을 열었다. 성장성이 보이면 회사 차원의 신규 사업으로 삼을 생각이다. 서울도시가스는 서울과 경기 서북부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며 연간 1조6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이다.
삼천리도시가스도 2008년부터 중식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생활문화사업 자회사인 SL&C를 설립한 후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과 서울 중구 수하동 센터원 건물 지하에 ‘차이797(Chai797)’을 열었다. 삼천리도시가스는 차이797 매장을 계속 확대하는 한편 해외 외식 브랜드도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연매출 1조 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이 외식사업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진입하기가 쉽고 실패해도 큰 손해를 안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중견기업의 외식업 진출에 부정적 시각이 많다.
연세대 경영학과 신동엽 교수는 “기업이 고도화하려면 기존에 갖고 있던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게 맞다”며 “중견기업이 기존 사업과 무관한 외식업에 투자하는 것은 국가 경제 전체로 볼 때도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 없이 무작정 외식업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있다. 행남자기는 2004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크리스피앤크리스피’라는 브랜드로 베이커리 매장을 냈다가 5년 만인 2009년 사업을 접었다. 고급 베이커리 카페 개념을 내세워 매장을 열었는데 가장 작은 케이크 하나가 3만5000원에 달해 소비자들이 외면한 것. 행남자기는 당시 크리스피앤크리스피를 프랜차이즈화하고, 빵 공장도 설립하는 등 베이커리 사업을 크게 확장할 계획을 세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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