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절차조차 귀찮은 ‘전시용 청년인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5일 03시 00분


公기관 “실적만 채우자”… 시험-면접도 아웃소싱
일터에선 방치… “실업률 낮추기 분식도구” 비판

상당수 공공기관이 청년인턴 선발을 위한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 등 인턴 선발과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취업포털 회사에 맡겨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면접을 포함한 선발과정 전체를 아웃소싱한다는 사실 자체가 공공기관들이 청년인턴 제도를 얼마나 형식적으로 운영하는지를 알 수 있는 사례라고 인사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공공기관들은 선발한 인턴을 복사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시키는 직원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인턴들의 원성을 사 왔다. 청년인턴제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데도 지금껏 유지된 것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의도했든 안 했든 청년인턴제가 ‘실업률 분식도구’로 이용됐다는 얘기다. 청년인턴제는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청년 취업을 늘리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공공기관을 통해 매년 1만여 명의 대학졸업생이나 졸업예정자를 청년인턴으로 뽑고 있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농수산물유통공사, 예금보험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산업인력공단, 한전 계열사, 지역난방공사, 산업단지공단, 에너지관리공단 등 공공기관들은 취업포털 S사, I사 등에 청년인턴 채용을 위한 홍보와 서류전형, 필기시험을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외에 적지 않은 공공기관은 아예 면접까지 외주업체에 맡겨 포털업체가 선발한 합격자들을 인턴사원으로 채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우리는 청년인턴 채용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정부에서 청년인턴을 많이 뽑으라고 하지만 거기에 쏟을 인력은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은 서류전형에서 필기시험까지 외주를 맡길 경우 청년인턴 50∼100명당 1200만 원가량을 채용 대행비로 외주업체에 준다고 한다. 일단 외주를 주면 취업포털은 취업 관련 유명 인터넷 카페 등에 광고를 올리거나 채용 홈페이지 제작, 고사장 대관, 합격자 발표 등을 일괄적으로 대행했다.

취업포털 측은 “공공기관들이 우리의 데이터베이스(DB)나 시스템, 채용 전문성 등을 인정했기 때문에 채용을 맡긴 것”이라며 채용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 20대 실업률 0.3%P 낮춘 효과 ▼


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외주채용을 방치하는 것은 인턴 채용자 수를 늘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목표가 다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재정부는 공공기관이 정원의 4% 이상 청년인턴 채용을 할 경우 매년 6월 실시하는 경영평가에서 ‘청년채용’ 부문에 만점을 준다. 청년인턴 채용자 중 2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권고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많이 뽑는 기관에 가점을 준다. 청년인턴을 어떻게 뽑는지, 인턴에게 어떤 업무를 맡기는지 등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재정부의 청년인턴 드라이브에 힘입어 285개 공공기관은 지난해 1만4588명, 올해 1만2246명의 청년인턴을 뽑았다. 10월 기준 20대 실업자가 25만9000명에 이르는 만큼 이 청년인턴들이 실업자로 분류되면 실업자 수는 4.7% 늘어난다. 20대 실업률이 6.7%에서 7.0%로 높아진다는 얘기다. 실업률 0.1%를 낮추는 게 아쉬운 정부로서는 청년인턴은 ‘고용 대박’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버리기 아까운 카드다.

외주채용을 통해 공공기관에 들어오다 보니 청년인턴들은 ‘나그네’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올해 한 에너지공기업 인턴을 마친 김형기 씨(27)는 “처음 한 달은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었는데 누구 하나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림자가 된 기분이었다”며 “회사에서 청년인턴들에 대한 애착과 성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가 밀려왔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어차피 거쳐 가는 인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선지 형식적으로 관리하고 교육한다”고 털어놨다. 김현수 재정부 인재경영과장은 “채용과 관련한 공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채용을 외부업체에 맡기는 기관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인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동엽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정부 방침에 마지못해 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청년인턴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외주채용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며 “청년인턴제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근본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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