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 ‘시슬리’의 필리프 도르나노 사장은 “이 브랜드의 세계 2위 시장인 한국은 끝없이 영감을 주는 특별한 나라”라고 말했다. 시슬리 제공
프랑스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 ‘시슬리’는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우는 글로벌 화장품기업의 대형화 바람 속에서 굳건히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만난 시슬리의 필리프 도르나노 사장(55)은 “훌륭한 화장품은 일관성 있고 뚝심 있는 연구개발(R&D)을 통해 탄생한다”며 “단기 매출에 신경 쓰지 않고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경영 오너 체제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랜드 자체는 1976년 탄생해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그가 태어난 도르나노 가문은 대대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낸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 만하다.
도르나노 사장의 할아버지인 기욤 도르나노 백작과 ‘시슬리’의 설립자인 아버지 위베르 도르나노 회장은 각각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설립에 관여했다. 폴란드 왕족 가문 출신으로 외교관이던 부친을 따라 유럽 각국의 자연환경에 심취한 어머니 이자벨 도르나노 부회장은 시슬리가 자연주의 콘셉트를 유지하고 식물성 성분을 개발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누나는 브랜드 설립 초기 10년간 모델로 활동했고 여동생은 영국지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경영 전반을 가족 전체가 맡고 있다 보니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시슬리에 한국 시장은 특별하다. 이 브랜드가 진출한 90여 개국 가운데 한국이 프랑스에 이어 지난해 기준 2위 규모의 시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수입 화장품업체 가운데 최초로 몇 해 전부터 샘플 용기에 프랑스어 영어와 함께 한국어 설명을 함께 넣고 있기도 한다.
도르나노 사장은 “피부 관리에 관심이 높아 질 좋은 기초제품을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 덕분”이라며 “프랑스에서는 제품을 판매할 때 간단한 사용법만 알려주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사용 순서, 성분, 같이 쓰면 좋은 제품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이런 점이 브랜드에 좋은 긴장감과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슬리는 유명 모델을 쓰지 않고 제품 자체로만 승부를 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모델을 쓰고 또 지난해부터는 TV광고까지 하고 있다.
“한국 모델인 전도연 씨가 시슬리의 오랜 팬인 데다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커 ‘코리아 온리’ 마케팅을 하는 셈입니다.”
그는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은 모두 봤고 한국 사진작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사무실에 걸어 놓고 있다”며 한국문화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연극 대본을 직접 집필하는 등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도르나노 사장은 곧 출시할 남성 향수 ‘오 디카르’란 제품명을 직접 짓기도 했다. 향수 이름은 이카루스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 올 2월 브랜드 최초의 남성 전용화장품 ‘시슬리움’을 론칭하면서 남성 화장품 시장에도 본격적인 도전장을 낸 그는 “권력을 지향하나 한없이 약하기도 한, 현대 남성의 모습이 이카루스의 이미지와 꼭 닮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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