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폰 샀다… 3G폰 원했는데도”… 신제품 강요하는 이상한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기능-비싼 가격의 신제품 강요하는 이상한 현실

부산에 사는 최모 씨(28)는 이달 초 휴대전화를 바꾸려고 한 이동통신 대리점을 찾았다. 최 씨는 3세대(3G) 휴대전화의 베스트셀러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2를 사려고 했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는 아직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망이 안 깔려 있는 데다 한 달 전에 친구가 갤럭시S2를 공짜로 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리점에선 “갤럭시S2 값이 최근에 올라서 기기 부담금 24만 원을 내야 한다”며 차라리 27만 원을 내고 최신형인 4G 갤럭시S2 LTE를 구매하라고 했다. 최 씨는 기기 가격이 얼마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4G 서비스가 월 사용료가 더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LTE폰을 구입했다.

‘구형’인 갤럭시S2와 최신형인 갤럭시S2 LTE의 가격이 비슷해진 것은 이동통신사의 가격 정책 때문이다. 이동통신사들은 휴대전화를 판매할 때마다 일선 대리점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대리점들은 이 보조금을 활용해 기기 금액을 깎아주는 데 쓰고, 남은 돈을 수익으로 챙긴다. LTE폰이 나오면서 이동통신사들이 기존 갤럭시S2에 대한 보조금을 최신형인 갤럭시S2 LTE폰으로 돌린 것이다. 이 때문에 구형 제품의 가격은 올라가고 신제품은 가격이 떨어지면서 LTE 망도 안 깔린 지방 소비자들이 LTE폰을 구입하게 된다.

이처럼 최근 기업들이 최신형 제품을 팔기 위해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기능이 들어간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 신제품이 나와도 구형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올라가기도 한다.

○ 최신형 4G폰은 싸고 3G폰은 비싸고…불법 현금 마케팅까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4G LTE 서비스를 시작하며 월 사용료를 올렸다. 예컨대 SK텔레콤의 월 5만 원대인 4G ‘LTE52’ 요금제와 3G ‘올인원 54’ 요금제는 문자메시지 제공 건수는 250건으로 동일하지만 음성통화료는 4G 쪽이 7000원가량 비싸다.

이동통신사들은 기존 3G 가입자를 4G LTE 가입자로 전환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일부 판매 현장에선 4G 가입자에게 최대 30만 원의 현금을 지급한다.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다. 16일 기자가 찾은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에서는 ‘당일 현금 지급’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TV도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받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제품 양판점 하이마트 매장에는 최신형 ‘스마트TV’만 있다. 매장을 방문한 배모 씨(43·서울 성북구 석관동)는 “다른 기능은 필요 없는데 방송만 잘 나오는 TV를 찾을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스마트TV란 스마트폰처럼 TV에서도 앱(응용 프로그램)을 쓰고, 인터넷과 연결해 웹 서핑도 할 수 있는 제품을 말한다. 문제는 아직 스마트TV 전용 앱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점. 또 이동통신사에서 서비스하는 인터넷TV(IPTV)에 가입하면 일반 TV를 구입해도 웹 서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TV 제조업체들은 최신 제품인 스마트TV를 더 많이 팔기 위해 구형인 기본형 TV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스마트TV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인 ‘다나와’에 따르면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40인치 일반 발광다이오드(LED) TV인 ‘파브 UN40C6500VF’ 모델은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 197만5000원대를 유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40인치 LED 스마트TV인 ‘파브 UN40D7000LF’는 212만 원대에서 200만 원대로 10만 원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 불필요한 풀 옵션, 자동차업계


자동차는 불필요한 옵션까지 기본으로 들어가면서 가격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내놓은 신형 ‘그랜저’의 최저 등급 모델인 ‘럭셔리’형의 가격은 3120만 원이다. 이 모델에는 △고급 가죽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버튼시동 스마트 키 시스템 △크루즈 컨트롤 △글로브 박스 쿨링 등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물론 편리하지만 꼭 필요하다고는 볼 수 없는 기능들이다. 기본 옵션이 늘어나면서 신차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2009년 그랜저 최저 등급 모델의 가격이 2552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년 새 560만 원(21.9%)가량 올랐다.

최근 현대차 매장에서 그랜저를 살펴본 회사원 김모 씨(35)는 “옵션을 모두 빼고 싼 가격에 기본 모델을 내놓는 게 소비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외국과 달리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여러 옵션을 하나로 묶어 패키지로 내놓기 때문에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조사팀 관계자는 “법적으로 기업들의 가격조정 행위를 제재할 수는 없지만,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부적절한 차별 대우를 받을 수 있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