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포괄동맹 시대, 그러나 무한경쟁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2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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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22일 우리 국회에서 비준 절차를 마침에 따라 양국은 지난 60여년 간의 군사안보 동맹을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하게 됐다. 애초 양국이 FTA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정치 안보상의 목적이 작용했던 만큼 앞으로의 한미 동맹은 '안보+경제'의 포괄 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미국과의 FTA를 완료한 만큼 향후 동북아 대미 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됐다. 하지만 냉엄한 경제전쟁의 현실에서 동맹 강화가 경제적 실익과 직결될 수만은 없다. 자칫 경쟁력 약화로 시장을 통째로 내 줄 수도 있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안보+경제' 포괄동맹 시대

FTA는 기본적으로 양국 간 관세장벽을 없애고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경제 협력이다. 하지만 최근의 FTA는 경제 뿐 아니라 협정국 간의 안보 및 다자동맹이라는 포괄적인 틀을 의미한다. 일본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를 적극 추진하고 중국이 아세안(ASEAN) 및 중남미와의 FTA에 힘을 쏟는 것도 이같은 다각적 동맹을 맺으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실제로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 요르단, 바레인 등 우방국과 FTA를 맺으면서 안보협력 국가에 시장을 개방한다는 원칙을 보여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경제 협력을 통한 양국간 안보 동맹의 심화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0월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미 FTA는 단순히 경제 차원을 넘어 외교와 안보 차원에서도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불안정한 동북아 외교 안보 지형에서 군비경쟁을 벌이며 한반도를 압박하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견제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크다는 게 정부의 속내다.

이준규 외교안보연구원 원장은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과의 FTA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해주고 결과적으로 한미 양국 간의 외교·안보적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던 우리나라가 주요 동맹국과의 FTA를 통해 한배를 탔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며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 도약의 기로에 서다

한미 FTA로 양국간 동맹의 심도는 더욱 깊어졌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최대 경제강국인 미국과의 무역국경이 무너져 냉혹한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FTA까지 맺은, 세계 10대 무역강국인 우리로서는 더 이상 미국에게 약자를 위한 관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의 GDP는 14조 3000억 달러(세계 GDP의 23%)로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다. 유럽연합(EU)와 FTA를 맺은 우리로서는 세계 무역의 60%에 이르는 세계 1,2위권의 경제권에 대한 관세 없는 접근권을 확보하게 된다. 통상교섭본부는 "FTA가 시행 중인 칠레, 아세안, 인도 등과의 교역액 증가 속도를 보면 시행 전후에 무역액이 30~50% 정도나 증가했다"며 "전 세계의 경기침체 여파 영향을 받겠지만 FTA 발효로 내년 한미간 교역량은 적잖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국책연구기관들은 경제효과에 대해 향후 15년간 수출은 13억 달러, 무역수지는 1억 4000만 달러 확대되고 일자리는 35만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같은 경제적 효과가 곧바로 '경제적 선'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의약, 법률 등 서비스 분야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보호에 안주하며 제조업에 비해 저생산성, 비효율을 드러낸 만큼 미국, 유럽의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픔을 거쳐야 한다. 멕시코가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뒤로 빈부격차 심화, 문화 종속, 공공서비스 기반 붕괴 부작용을 톡톡히 겪었던 것도 우리로서는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FTA는 이제까지의 시장 개방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개방'에 가까운 만큼 자칫 우리 경제가 경쟁력 강화에 소홀히 할 경우, 우리 시장을 통째로 외국 자본에 내 줄 수도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22조 원 이상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농업 분야 피해에 대해서도 꼼꼼히 짚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한미 FTA가 발효되면 농어업 분야에서 향후 15년간 12조 6683억 원(연평균 8445억원)의 누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제약 분야도 만만찮은 피해가 예상된다.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복제의약품의 제조시판을 유보하는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돼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특허권이 더욱 강화되고 국내 업체의 복제약, 개량신약 개발은 더욱 위축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약 분야에서만 향후 10년 간 1590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수동 산업연구원(KDI) 연구원은 "범정부 차원의 상시 모니터링 체제를 갖춰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한미 FTA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며 "FTA로 인한 이익은 최대화하고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는 조기경보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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