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이른바 ‘버핏세’ 도입 논란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점화될 조짐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된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제안을 홍준표 당대표가 지지하고 나서면서 한국판 버핏세 도입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 버핏세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이름을 딴 ‘부유층 대상 세금’으로, 올 8월 버핏 회장이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부각되고 있는 최근 흐름에서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부자 감세’ 철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정치권의 갈등이 이제는 ‘부자 증세’ 논란으로 옮아가는 양상이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정적자 감축 방안의 하나로 버핏세를 제시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연소득 100만 달러(약 11억5000만 원) 이상인 고소득 가구에 5.6%의 부가세 부과를 제안했다. 일본에서도 총리 자문기구인 세제조사회에서 부유층을 대상으로 소득세율과 상속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버핏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이미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놨다. 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는 최근 연소득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게 40%의 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을 당에 공식 건의했다. 민노당 이정희 대표도 지난해 9월 1억2000만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게 소득세율 40%를 적용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현재 소득세 최고구간은 연 8800만 원 이상으로 세율은 35%다.
한나라당에서도 22일 홍준표 대표가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돈 더 버는 사람은 세금을 더 낼 수 있도록 소득세법을 바꿔야 한다”고 밝히면서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방식의 버핏세 도입에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버핏세 도입은 세수증대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도 세수증대 효과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치권의 주장대로 1억2000만 원이나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게 40%의 세율로 소득세를 물리더라도 세수 증대효과는 1조∼1조8000억 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비과세 및 감면 시한이 다 된 상품의 일몰을 올해 연장한 데 따른 세수감소분(2013년 기준 6조7000억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높은 만큼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하면 고소득자의 상대적인 세 부담이 늘어나 탈세 시도만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면세자 비율이 20∼30%에 불과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면세자 비율은 40%에 이른다. 더욱이 최고세율 40%에 각종 사회보험료를 더하면 고소득층의 실제 세 부담은 소득의 절반에 이르게 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올해 예정됐던 감세를 취소했는데 지금 다시 증세를 논의하는 것은 단기간에 너무 급격한 변화”라며 “경제가 어렵고 각종 사회보험료도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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