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이 불었다. 10명 정도 탈 만한 조그만 보트를 보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일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올랐다.
23일 오후 노르웨이 남부 호르달란 주 소트라 앞바다. 세계 최대의 연어양식업체 마린하베스트의 연어 양식장으로 가는 길이다. 배를 타고 5분쯤 나가자 거짓말처럼 바다가 잔잔하다. 옆에 서 있던 노르웨이수산물수출위원회(NSEC) 헨리크 안데르센 이사가 “피오르 덕분”이라며 씩 웃는다. 양식장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만(灣) 한가운데에 안겨 있다.
노르웨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수산물 수출국이다. 지난해 93억 달러 규모의 수산물을 수출했다. 빙하가 만든 피오르 지형은 관광 자원인 동시에 해수면을 잔잔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일찍이 1960년대부터 양식 어업이 발달했다.
연어 외에도 고등어, 대구, 열빙어(시샤모) 등을 수출한다. 노르웨이의 수산물이 세계적으로 하루에 3700만 번 식탁에 오른다는 통계도 있다. 어업이 주요 산업이지만 기후 변화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았다. 오히려 조업 가능한 지역이 북극해까지 확대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작 수산물은 노르웨이에서 세 번째 수출품이다. 1975년 영국과 함께 개발한 북해 유전에서 나온 원유와 가스가 영세 어업국을 단번에 세계적인 부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인구는 490만 명 정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를 훨씬 넘는다. 물가는 비싸도 교육과 의료 등 복지 수준이 높아 ‘삶의 질’ 순위에서 늘 세계 1, 2위를 다툰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연이 준 혜택 덕분에 풍요롭게 잘사는 나라’가 노르웨이다. 하지만 별로 부럽진 않았다. 어차피 남의 나라 얘기 아닌가.
짧은 취재 여행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대목은 따로 있었다. 열빙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열빙어는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은 수산물이다. 연어처럼 평생 단 한 번만 알을 낳는다. 노르웨이는 자국 어부들에게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25년 동안 단 11년만 열빙어 조업을 허용했다. 조업이 끝난 뒤 산란할 수 있는 열빙어가 50만 t 이상 남아 있을 확률이 95%를 넘어야 조업을 허용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안데르센 이사는 “수출 시장을 다 잃는 한이 있어도 잡지 않고 기다린다”고 말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의 사례와 대비된다. 뉴펀들랜드 섬 인근 바다는 16세기 이후 세계에서 대구가 가장 많이 잡히던 곳이다. 하지만 남획으로 씨가 말랐다. 캐나다 정부가 1992년 부랴부랴 조업 중단을 선언했지만 아직도 대구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에선 어선마다 조업 가능 쿼터가 정해져 있다. 무진장한 수산 자원이 있지만 어선마다 어획량을 엄격하게 지킨다. 쿼터를 넘기면 면허가 취소될 정도로 처벌이 강력하다.
‘지속가능성’이란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그저 지금 다 잡으면 미래엔 잡을 게 없다는 이치다. 노르웨이에선 지속가능성이 삶에 녹아 있다. 또 일단 큰 원칙이 정해지면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기꺼이 단기적인 이익을 희생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그 모습이 진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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