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 도쿄IT지원센터의 다카하시 이쿠무네 자문위원은 “일본의 스마트폰 보급 확산으로 한국 IT 기업의 제2차 일본 진출 붐이 열렸다”며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서둘러 매출을 내야 한다는 조급증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뛰면서 생각하는 한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스피드는 큰 장점이지만 일본 시장에서는 꼼꼼한 사전 준비 없이 성공하기 힘듭니다.”
KOTRA 도쿄IT지원센터의 다카하시 이쿠무네(高橋生宗·72) 자문위원은 10년 동안 일본에 진출하려다 좌절한 한국 기업들을 숱하게 봐왔다. 2000년대 초반 한국 IT 기업의 이른바 ‘제1차 일본 진출 붐’부터 최근까지 그를 거쳐 간 한국 기업만 200여 개에 이른다. KOTRA는 다카하시 위원의 오랜 상담 경험을 묶어 최근 ‘일본 IT시장 진출 내비게이터’라는 책을 출간했다.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이 최근 급증했다. 2000년대 초반과 다른 점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한국의 IT 붐 당시 일본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 기업은 ‘글로벌’이라는 구호만 가지고 일본에 왔다. 일본 바이어를 설득할 만한 전략과 논리가 부족했다. 일본에서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한국의 휴대전화용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최근 한국 기업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제대로 준비된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비즈니스 환경이 구미에 비해 까다로운 측면이 있기 때문 아닌가.
“한국 IT 기업이나 벤처 사장들은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현지에 지사만 두면 당장이라도 계약이 쏟아지고 매출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거래 당사자 간에 신뢰가 있으면 계약까지 쉽게 가지만 일본에서는 경영진 간에 합의한 내용이라도 실무자 수준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게 관행이다. 의사결정 과정이 더딘 일본 비즈니스 환경의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바이어 상담에서 서둘러 계약을 하고 싶은 나머지 시장성이 의심되는 연구실 수준의 상품을 보여주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만 이야기한다. 한국 문화에서는 의욕적인 표현인지 몰라도 일본에서는 오히려 신뢰를 갉아먹을 수 있다.”
―한국은 유선인터넷 시장이 발달했지만 무선인터넷 시장은 일본이 앞서있지 않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일찌감치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무선인터넷 기술’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무선인터넷 기반 기술이 상당히 앞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서비스하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이동통신사가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쥐고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기기를 발주하는 구조였다. 이러다 보니 기기 제조업체들은 창의성 있는 제품을 만들려는 고민이 부족했고 휴대전화용 소프트웨어 업체도 클 수가 없었다. 반면 한국은 기반기술을 응용해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많다. 한국 기업들에는 좋은 기회가 열린 셈이다.”
다카하시 위원은 “한국 기업은 달리면서 생각하기 때문에 도저히 일본 기업이 따라갈 수 없는 민첩성을 지녔다”며 한국 기업을 부러워했다.
그는 “4, 5년 전만 해도 일본 기업들은 같은 가격이면 유럽이나 미국 기업과 계약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분위기가 반전돼 한국 제품을 더 선호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과 상품에 ‘뭔가 있다’는 신비감마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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