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카드 수수료 인하 요구에 카드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국내 자동차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현대차가 카드 결제를 중단할 수 있다며 압박하자 카드사들이 현대차 요구대로 수수료율을 내려주기로 한 것. 카드업계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카드사들이 힘센 대형 가맹점에는 쩔쩔 매면서 중소자영업자들의 수수료율 인하 요구는 거부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가맹점과 백화점 같은 다른 대형 가맹점들이 현대차 수준으로 수수료율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카드를 제외한 신한 삼성 현대 롯데 비씨 등 5개 전업계 카드사들은 29일 현대차의 수수료율 인하 요구를 받아들여 12월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6월 말 이례적으로 모든 전업계 카드사에 공문을 보내 ‘가맹점 수수료율을 신용카드는 1.75%에서 1.7%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다만 국민카드가 인하 요구에 반발하자 현대차는 10월 가맹점 계약이 끝나자마자 국민카드와의 계약 연장을 거부했고, 국민카드 회원들은 이달 4일부터 현대차나 기아차의 차를 살 때 국민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코너에 몰린 국민카드는 현재 현대차와 추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거의 모든 카드사가 현대차 앞에 굴복한 것은 국내 자동차시장의 80%를 장악한 현대·기아차가 카드사 수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건당 결제금액이 다른 구매 상품보다 월등히 높은 가운데 회원들의 자동차 구입으로 카드사들이 올리는 매출이 연간 9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측은 “우리의 건당 결제금액이 주유소, 종합병원보다 훨씬 많은데도 카드사는 더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체크카드는 금융비용이 전혀 없으므로 수수료를 대폭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차가 독점적 지위와 고객을 볼모로 횡포를 부리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실토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중소자영업자나 영세상인의 수수료율 인하 요구에는 ‘모르쇠’로 버티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집회나 동맹휴업 등 집단행동을 벌이고 정치권까지 나서면서 마지못해 10월 중소가맹점에 한해 1.8%로 낮추기로 했지만 음식업, 유흥업 등 다른 중소업종들이 대형 가맹점 수준으로 수수료율을 낮춰달라고 하는 요구에는 요지부동이다. 특히 현대차는 이미 중소가맹점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는데도 추가로 내려주는 것이어서 중소자영업자들의 박탈감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또 백화점, 대형마트 등 다른 대형 가맹점들도 현대차 사례를 들며 수수료율 인하 요구에 나설 개연성이 높다.
수수료율이 내려가면 당장 카드사들은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자동차를 살 때 체크카드로 결제하면 전체 금액의 1.2∼1.5%를 캐시백이나 포인트로 적립해주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항공 마일리지를 쌓아주고 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를 낮추면 부가서비스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중소자영업자를 위해 시작된 수수료율 인하에 오히려 대기업이 수혜를 보고 있다”며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낮춰주면 정작 형편이 어려운 중소자영업자들과 소비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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