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주식시장에 기대를 가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증시에 버블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기업이익과 주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9배에 불과하다. 통상 PER가 10배 이상에서 형성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주가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저평가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한국 증시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중국 투자 붐이 일었던 2007년 27배까지 올라갔던 중국 증시의 현재 PER는 한국보다도 낮은 8.8배에 불과하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 증시의 PER도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
왜 글로벌 증시가 저평가돼 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극심한 위기 직후에는 증시의 저평가 현상이 나타났다. 위기 국면에서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기피하면서 증시의 저평가가 진행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증시는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오일 쇼크, 1987년 블랙먼데이 등 극도의 경제 혼란기 직후 증시 저평가 현상이 찾아왔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시대는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났다. 2001∼2004년 한국 증시의 PER는 7, 8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2003년 카드 버블 붕괴 등 2, 3년에 한 번꼴로 위기를 경험하면서 주가가 크게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증폭된 주식 투자에 대한 불신이 저평가 시대로 귀결됐다.
경험은 투자자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에 부동산 불패 신화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복잡한 분석에 앞선 집단적 경험의 결과물이었다. 부동산을 사놓기만 하면 가격이 올랐기에 부동산 투자가 자산 증식의 대표적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최근 주택 가격이 조정을 받으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흔들리고 있다. 최근 글로벌 증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저평가도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최근 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위기의 결과물일 수 있다. 투자자들에게 남아 있는 트라우마가 주가의 저평가를 불러오는 것이다.
전반적인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도 증시 저평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재정 긴축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성장을 구가하던 중국 경제도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경제성장 둔화 국면에서는 기업 이익 증가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주가는 앞으로의 이익 성장 둔화를 미리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증시에 버블이 없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 저평가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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