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발생한 울산 석유화학단지 정전 사고를 계기로 전력공급 안정성 문제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한국전력이 기업들의 ‘전선 복선화(이중선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지식경제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전선 복선화란 각 기업이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을 전선을 2개씩 만드는 것으로, 단선으로 공급받을 때보다 정전 사고 발생 위험이 낮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다.
8일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한전은 최근 잇따르는 산업단지 정전사고와 관련해 기업들의 전선 복선화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를 지경부에 정식 건의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배선선로가 이중으로 돼 있으면 한쪽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한쪽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큰 사고가 날 위험성이 훨씬 낮아진다”며 “그간 고객(기업)에게 복선화를 적극 권장해왔지만 비용문제 때문에 이를 적용한 곳이 많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전선 복선화는 기업들의 선택사항이다. 한전은 이를 ‘의무화’해서라도 정전 사고 발생률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갈수록 산단 설비 노후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산단 정전사고는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복선화만이 대규모 정전사태를 예방할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국에 조성된 주요 산단은 지은 지가 30∼50년에 이르러 관련 설비가 매우 노후한 실정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복선화를 위해서는 변전소에서 기업까지 전선을 하나 더 구축해야 하는데 km당 구축비용이 지상 설치(철탑)의 경우 10억 원, 지하 설치(매립)의 경우 40억 원이 든다. 보통 변전소에서 기업까지의 거리는 수 km에 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최소 100억 원 가량의 초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울산 산단에 입주해 있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복선화가 좋다고 해도 중소기업이 이 정도 설치비용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몇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사고를 대비해 복선화를 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복선화가 기술적으로 정전을 막을 완벽한 대안이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현재 복선화를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동일한 변전소에서 선을 두 개 끌어오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각각 다른 변전소에서 선을 하나씩 끌어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구축이 용이하지만 변전소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대체 전력을 공급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발전소마다 출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전류가 한곳에 모이는 과정에서 관리 기술적 어려움이 크다는 게 문제다.
이미 복선화를 하고도 정전 피해를 본 기업이 적지 않다는 것도 복선화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이유다. 올 초 여수 산단 정전 당시 GS칼텍스는 복선화가 돼 있었지만, 두 선 모두 같은 변전소와 연결돼 있어 정전 피해를 보았다. 이번 울산 산단 정전에서는 일부 기업이 각기 다른 변전소(신울산변전소와 용연변전소)를 통해 복선화를 구축하고도 전류를 스위치해 주는 내부 설비가 고장 나 정전 피해를 보았다.
석유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쪽에서 전원이 끊기면 수 초 안에 다른 쪽 라인으로부터 전력 공급이 재개돼야 하는데 이게 기술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기계가 절대 꺼지지 않는다는 확실한 전제가 있지 않는 한 복선화는 무리”라고 말했다. 지경부 역시 “복선화 비용은 모두 업체 부담이기 때문에 의무화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지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7일부터 울산 정전 원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합동점검반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시설 증설과정에서 생긴 자재 또는 시공불량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전은 용연변전소의 과부하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전선 케이블 단선을 2개에서 3개로 증설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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