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장애인 배려… 아이폰과 갤럭시 넥서스의 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눈을 감으면 익숙했던 주위가 다르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내려놓던 물건들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하루 종일 눈을 피곤하게 만들던 활자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래도 1시간만 눈을 감고 지내보기로 했다. 마침 휴가였고 급한 일은 없었으니까.

계기는 구글코리아 홍보팀에서 굉장히 자랑스럽게 “이제는 안드로이드폰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전자가 만든 ‘갤럭시 넥서스’라는 새 스마트폰에 구글의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가 쓰였는데 장애인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세상이다. 길을 찾고, e메일을 보내고, 뉴스를 읽고, 정보를 검색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안 보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뜻에서 눈을 감고 갤럭시 넥서스를 켜 봤다. 구글에서 미리 설명을 들은 대로 눈을 가린 채 전원이 켜지는 소리를 들은 뒤 화면 위에 ‘네모(□)’ 그림을 손가락으로 그렸다. 그러자 ‘토크백(Talk Back)’이란 기능이 켜졌다. 스마트폰 위의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한 번 건드리면 아이콘의 이름을 읽어주고 두 번 건드리면 실행하는 원리다.

사용은 생각보다 편리했다. e메일도 음성으로 듣고, 전자책과 웹서핑도 음성으로 들었다. 생각보다 쉽게 적응됐다. 내가 쓰는 아이폰에서도 같은 기능을 켜봤다. ‘보이스오버(Voice Over)’라는 기능이었는데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동일했다.

처음 버튼 없이 화면만 존재하는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시각장애인들은 촉각으로 전화를 제어할 수 없어 언짢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폰을 손에 쥐고는 생각이 바뀌었단다. 바로 보이스오버 기능 덕분이었다. 단순히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을 넘어 e메일을 주고받고,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쓸 수 있다니.

구글이라고 이런 걸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안드로이드에 비슷한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가족이 시각장애인인 직원들을 이 팀에서 일하게 하면서 해당 팀에 강하게 동기를 부여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안드로이드폰은 시각장애인이 쓰기에 아이폰 못잖은 쉬운 기계가 됐다. 비슷한 일을 하는 과거의 시각장애인용 전자기기는 대당 가격이 500만 원가량 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기술이 장애를 쉽게 극복하게 해준 셈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갤럭시 넥서스는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TTS(Text to Speech)라는 기능이 영어만 기본으로 적용돼 있었다. 한글로 안내를 들으려면 ‘한글 TTS’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했는데 어디에도 어떻게 설치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한국의 시각장애인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이폰에서는 한국어 안내가 잘됐다.

문제는 국내 법제도였다. 미국에서는 모든 휴대전화에 TTS 사용이 의무화돼 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 정책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런 규제가 없다. 제조사의 선의에 복지를 맡겨 놓은 셈이다. 그래서 한국의 삼성전자가 만든 갤럭시 넥서스에서는 한국어 음성안내를 듣기가 힘든데, 미국의 애플이 만든 아이폰에서는 처음부터 한국어 음성안내가 가능했다.

정부 공무원들께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규제하네 마네, 게임을 심의하네 마네 하면서 규제를 꼼꼼하게 고민한다. 그 꼼꼼함으로 TTS에도 신경을 좀 쏟아주시면 어떨까. 큰 예산 없이도 세상을 한걸음 좋게 만들 확실한 수단일 텐데.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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