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22일 “내년에는 대기업 구조조정을 2개월 앞당겨 실시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22일 “내년 초 37개 대기업그룹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조기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1분기 유럽 재정위기로 국내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고, 선제적 구조조정에 착수해 부실기업을 솎아내겠다는 의미다. 최근 주가반등으로 시장에 위기감이 잦아든 것과 달리 당국은 ‘힘든 1년’을 예상하고 있는 셈이다.
권 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감원 10층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내년 1분기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 국가의 국채 만기가 대거 도래해 위기가 최고조에 이를 개연성이 높다”며 “부실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만큼 보통 5월에 착수하는 주채무계열 대기업그룹에 대한 위험평가와 구조조정 시기를 내년에는 2개월 정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권 원장과의 일문일답.
―기업 구조조정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미 여러 차례 한 것 아닌가.
“최근 3년간 살릴 기업과 퇴출 기업을 가리는 평가를 했지만 불행하게도 (구조조정을) 다 못한 측면이 있다. 특히 유럽 국채 만기 때 은행들이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고 회수에 나서기 시작하면 위기가 심화할 것이다. 부실이 경제 전반에 확산되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 부실이 많아질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은행들이 (실제) 부실이 생길 것에 대비해 내부에 쌓아두는 대손준비금을 더 늘리라고 주문했다. 금감원이 내년 초에 은행별 대손준비금 적립 실태를 점검할 것이다. 준비금을 늘리면 은행의 이익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위기에 대비하는 게 먼저다.”
―금융회사 대출이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들이 대기업 계열사라고 해서 쉽게 대출해 주는 관행이 있다. 일부 대기업은 이 돈으로 문어발처럼 사업을 늘렸다. 경기 둔화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미 일부 대기업은 방만하게 경영한 뒤 부실 계열사만 포기하는 ‘꼬리 자르기’를 한다. 은행들이 여신심사를 제대로 하는지, 대기업 금융 자회사가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사례가 있는지 보겠다. 대기업 여신을 조금만 줄여도 중소기업과 창업자를 지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질 것이다.”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율을 내려 달라는 가맹점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나.
“이 문제는 카드를 쓸수록 빚이 늘어 전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점까지 감안해서 접근해야 한다. 수수료율이 낮은 체크카드를 더 많이 사용하도록 소득공제율 상향조정 등의 혜택을 늘리겠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는 신용카드 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금융위원회와 함께 검토하고 있다”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이 많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고민스럽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금융당국이 자체적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전통시장 상품권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지만 사용 범위가 너무 좁다. 대형 백화점이나 할인점을 제외한 모든 자영업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만들어 기업들이 보너스를 줄 때 소규모 자영업체에서 쓸 수 있는 ‘범용 상품권’ 형태로 지급하면 서민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6월에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가계 빚은 900조 원 규모로 늘었다. 백약이 무효인가.
“부채 규모를 경제성장률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꾸준히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부채총액을 관리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부채의 질을 높이는 문제다. 최근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이 늘고 생계비 대출이 많아지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계열의 저축은행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을 하도록 권고하겠다.”
―금감원을 포함한 금융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는 비판이 많다. 취임 후 달라진 게 있나.
“권한이 많으면서도 급여가 높다는 점 때문에 그런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젊은층 사이에서 취업하고 싶은 직장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 공기업의 고위직을 줄이되 신규 채용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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