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이 3D업종? 이젠 3無업종!… 젊은이들 시화산단으로 몰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 경기 안산시 시화국가산업단지 내 도금업체인 연일하이피의 공장은 새로 지은 3층 건물의 한 층을 다 쓰고 있었다. 길이 50m, 폭 1.8m의 조립라인 4개. 20대 초반의 직원이 도르래 장치에 200m 길이의 인청동을 걸자 기름때를 벗기고 표면에 니켈과 금을 차례대로 입히는 공정이 진행됐다. 27일 찾은 이 공장은 첫눈에 여느 도금업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원재료를 걸고 완제품을 빼내는 직원들이 달라 보였다. 독한 화학약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거나 서로 소리를 지르는 이들이 없었다. 여기저기 눈앞을 가리는 뿌연 증기도 보이지 않았다. 소음도 거의 없어 사무실 같았다. 연일하이피는 11월 중순 이곳 청정표면처리센터에 입주했다. 그 직후 뽑은 고졸 및 4년제 대학 졸업자 4명을 합쳐 현재 생산직 직원은 모두 12명. 이 회사 김태규 대표는 “생산공정이 현대화돼 이들 모두 달라진 환경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
27일 경기 안산시 시화국가산업단지 청정표면처리센터에 입주한 도금업체 연일하이피 공장에서 직원들이 휴대전화 칩 도금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일반적인 도금공장과 달리 이곳은 악취, 오수, 소음이 없다. 자연히 직원들의 이직도 줄면서 분위기와 업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안산=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7일 경기 안산시 시화국가산업단지 청정표면처리센터에 입주한 도금업체 연일하이피 공장에서 직원들이 휴대전화 칩 도금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일반적인 도금공장과 달리 이곳은 악취, 오수, 소음이 없다. 자연히 직원들의 이직도 줄면서 분위기와 업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안산=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표적인 기피업종, 사양산업으로 취급받던 도금업체 6곳이 ‘에코드림’이라는 조합을 결성해 1만5800m²의 땅에 465억 원을 투자해서 현대적 생산시설과 공동 폐수처리장 등을 갖춘 청정표면처리센터를 세워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이 업체들이 센터로 옮긴 뒤 취업하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주변 소각장 폐열(廢熱)을 생산에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젊은이들이 찾는 업종으로 변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다른 직장을 거쳐 연일하이피에 입사한 한중우 씨(33)는 회사가 표면처리센터로 옮긴 뒤 연일 싱글벙글이다. ‘도금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한 씨는 “우리 회사는 기존 업체와 다르다. 화학약품이 잔뜩 들어간 물에 직접 손을 담가야 해 일을 마치면 두통에 시달리기 일쑤인 과거의 도금업을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다른 입주기업인 우신이앤지 역시 요즘 직원들의 이직이 사라지면서 생산효율이 올라가고 있다. 이 회사 류한석 대표(조합 대표 겸직)는 “몇 달 전만 해도 회사를 옮기는 직원이 여러 명이어서 제대로 일할 수 없었는데 이곳으로 옮긴 뒤에는 이직하는 직원이 없다”고 말했다.

조합 측에 따르면 센터 직원 700여 명 중 10% 정도가 30대 초반의 젊은이들.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도 5% 미만으로, 50% 이상인 도금업 평균보다 상당히 낮은 편이다.

센터에는 일본 도금업체의 한국지사인 ‘맥테크코리아’도 들어와 있다. 이 회사는 생산은 하지 않고 도금 기술 연구만 한다. 류 대표는 “외국 도금업체의 연구개발(R&D) 인력까지 들어와 센터가 생산, 연구단지로 변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전기사용 제로’ 업종으로


청정표면처리센터는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주조(주물), 금형, 용접, 열처리, 소성가공, 도금 등 ‘뿌리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도 실험하고 있다. 도금에 필요한 40∼80도의 물로 데우는 데 쓰이는 에너지는 센터에서 300m가량 떨어진 쓰레기소각장의 폐열이다. 류 대표는 “소각장과 10년간 하루 100t의 열 공급계약을 맺었다”며 “전에 비해 전기료가 30%에 불과해 연평균 15억 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센터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폐수처리시설 역시 새로운 시도다. 폐수를 공동 처리하면서 약품과 인력을 중복 투입할 필요가 없어 과거 t당 1만5000원이던 비용이 4000원으로 줄었다. 센터 측은 폐수 공동처리만으로도 연간 12억여 원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센터는 최근 새로운 사업도 구상 중이다. 폐수처리 뒤에 남은 20∼30도의 물을 센터의 냉난방용으로 재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대표적인 전기소모성 업종인 도금공장이 전기를 전혀 쓰지 않는 ‘전기 프리존(Free Zone)’으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 정부, 뿌리기업의 벤치마킹 사례로


뿌리기업의 성장을 주요 정책목표로 제시한 정부는 청정표면처리센터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기로 했다. 14일 이곳을 방문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센터를 둘러보고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생산현장”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설을 갖추는 데 적잖은 돈이 든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용지를 팔면서 땅값의 20%만 먼저 받고 나머지는 준공 시점에 내도록 한 것 빼고는 정부도 해준 게 없다. 정부는 당초 센터 폐수처리시설에 35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지키지 못했다.

권평오 지경부 지역경제정책관은 “작업장을 현대화하고 교육과 여가시설을 한데 모아 쾌적한 근로환경을 만드는 QWL(Quality of Work Life) 사업 차원에서 청정표면처리센터 같은 모델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추가 예산 확보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산=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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