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서해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로고를 단 자동차들은 칼바람을 뚫고 평택항을 쉴 새 없이 누볐다.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평택항 기아부두. 수출용 차량을 배에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약 20만 m² 면적의 부두 초입에서는 공장에서 갓 나온 차들이 야적장에 배치됐고, 바다와 맞닿은 지점에선 수출국별로 분류된 차량이 배에 실리고 있었다. 현대차의 ‘쏘나타’, 기아차의 ‘스포티지R’ ‘K5’ 등 2011년 세계 곳곳을 누빈 국가대표급 차량들이다.
평택항은 지난해 국내외에서 650만 대를 팔아 ‘글로벌 톱5’ 자동차회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현대자동차그룹의 수출 전초기지다. 2011년 이곳을 통해 70만 대가 넘는 현대·기아차가 수출됐다. 연중무휴 가동한다는 가정 아래 현대·기아차가 하루 2000대 가까이 평택항을 거쳐간 셈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창사 이래 2011년처럼 평택항 수출 부두가 바빴던 적이 없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발효되면 올해는 더 바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경제의 주축인 자동차산업이 2012년 임진년 새해에 또 한 번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밀리면 배가 못 뜬다”
이날 오후 2시 평택항에 닻을 내린 배는 센츄리더호와 그린데일리호. 기아차 관계자들과 항운노조 작업자들은 중동으로 향하는 그린데일리호에 1076대의 차를 싣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오홍석 기아차 수출선적팀 차장은 “배가 연이어 들어오기 때문에 예정된 시간을 지키려면 쉴 틈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후 4시 반. 그린데일리호가 서해로 떠나자마자 인근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코멧에이스호가 기아부두에 접안했다. 직원들은 곧바로 코멧에이스호로 차량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4시간여의 작업 끝에 이 배는 기아차 595대, 현대차 255대를 싣고 오후 9시 호주로 향했다. 이날 낮 12시 반 평택항에 들어온 센츄리더호는 이틀 동안 1298대의 차량을 실어 다음 날 서해로 나아갔다.
3척의 배가 드나드는 와중에 공장에서 막 출고된 ‘따끈따끈한’ 차들이 꼬리를 물고 기아부두에 도착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 나들목에서 평택항으로 향하는 왕복 10차로 도로는 차량을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로 가득했다.
이런 분주함은 지난해 내내 계속됐다. 2003년부터 평택항 기아부두에서 일한 오 차장은 “남들 다 쉬는 일요일 중 절반이라도 직원들을 쉬게 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올해도 이미 1월 수출 일정이 꽉 차 있어 편히 쉬기는 틀린 것 같다”고 하소연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평택항 기아부두를 드나드는 배는 매달 50∼55척.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연초에도 이곳은 1일 단 하루만 쉰다. 이런 사정은 평택항뿐 아니라 울산, 군산, 목포 등 현대차그룹의 다른 수출항구 모두 마찬가지다.
○ 자동차 수출 올해도 순풍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평택항 등 4개의 수출항구에서 수출된 현대·기아차의 차량은 모두 204만5487대. 2010년 전체 수출 물량인 199만2784대를 넘어선 사상 최대 규모다. 수출액도 2010년 252억 달러에서 지난해 약 290억 달러로 15% 가까이 늘었다. 현대차그룹은 “과거 소형차 위주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쏘나타’ ‘K5’ ‘그랜저’ 등 중대형 차량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출금액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낸 현대차그룹은 올해도 이 같은 추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속적인 품질경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인정받은 데다 지난해 발효된 유럽연합(EU)과의 FTA에 이어 올해는 한미 FTA 발효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7월 현대차 중국 3공장, 11월 현대차 브라질 공장이 각각 완공되면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는 유럽과 신흥시장에서도 연간 100만 대를 파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 자동차부품업계도 바쁜 한 해
자동차회사뿐 아니라 자동차부품업계도 2012년 바쁜 한 해가 예상된다. 부품업계는 한미 FTA 수혜를 예상하고 생산설비 확충에 들어갔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재 2.5∼4.0%인 자동차부품 관세는 즉시 철폐된다. 0.1%의 원가 절감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부품업계에서는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미 FTA가 발효된 EU로의 한국산 자동차부품 수출은 지난해 11월까지 33억9500만 달러로, 2010년 전체 규모(31억15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자동차부품업계는 지난해 50억 달러 수준이었던 대미(對美) 수출도 올해는 한미 FTA 발효에 힘입어 6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문석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수출전시팀장은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산 자동차부품의 성능도 인정받은 데다 일본, 유럽산 부품보다 가격도 싸기 때문에 해외 자동차업체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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