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오전 10시 경남 통영시. 거제도까지 이어진 조선소에서 막 건조된 배 몇 척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근로자들은 건조 작업에 한창이었다. 활기차 보였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4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 한산도에 도착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한산도는 통영시의 부속 섬 중 세 번째로 크지만 자동차 한 대도 쉽게 볼 수 없었다. 가끔 만나는 주민들은 모두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었다.
“수동태를 만들려면 목적어가 주어 자리로 나와야 해요. 그리고 그 뒤에 be동사와 과거분사를 쓰면 돼요. 간단하죠?” 영어강사 이율미 씨가 한산중 1학년 7명에게 수동태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꽤 유명한 영어강사다. 그는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질문을 던졌고, 학생들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수업 중간에 언제라도 손을 들고 질문했다. 여느 교실의 수업과 다름없었다. 한 가지만 빼놓고는.
그건 ‘거리’였다. 이날 강사와 학생들은 서로 400km가량 떨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한산중이 아니라 서울의 한 온라인 강의용 스튜디오에 있었다. 이들을 이어주는 건 42인치 인터넷TV(IPTV)와 태블릿PC인 아이패드2, 초당 100Mb(메가비트)급 초고속인터넷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통영시, KT가 손잡고 산간도서 지역 학생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IPTV로 유명 학원강사의 수업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것이다. 원격 수업은 이날이 이틀째였다.
한산중의 전교생은 25명, 그나마 한산도 본섬에 사는 학생은 12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생은 비진도 등 10여 개 인근 섬에서 매일 아침 통학선을 타고 등교한다. 섬이 많고 외지다 보니 초고속인터넷도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가정에선 위성 인터넷을 쓰는 까닭에 도시보다 인터넷 속도가 훨씬 느리다. 통영 시내 학원을 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고 도시에서 인기 있는 ‘인강(인터넷강의)’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라이브쌤’이라는 이름의 스마트러닝 사업 덕분에 교육 품질이 달라졌다. 단순히 TV 화면만 지켜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손에 들린 아이패드에 강의 내용이 그대로 나타난다. 강사가 파워포인트 교육 자료에 빨간 줄을 그으면 학생들의 아이패드 자료에도 함께 그어지는 식이다.
한산중 학생들은 새해에는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 학교는 지금까지 영어 원어민 강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워낙 외지다 보니 현지에서 근무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굳이 한산도에 오지 않아도 외국인 강사가 서울에서 이곳 학생들과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 학교 김현진 양(13)의 꿈은 인근 통영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해 조선소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서울의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김 양은 “영어와 수학이 부족해서 집에서 인터넷강의도 들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이제 서울의 유명 강사에게 수업도 들을 수 있어 공부에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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