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재정부 “소득세 개편안 못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국회 ‘내달까지 부유세 정부안 요구’에 정면 반발

“국회 멋대로 세법을 바꿔놓고 이제 와서 우리에게 개편방안을 보고하라고 하나. 못하겠다.” 국회가 기획재정부에 소득세 과세체계 조정방안을 마련해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하라고 했지만 재정부는 “국회에 그런 자료를 제출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해 말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이 국회에서 기습 처리된 것과 관련해 주무 부처인 재정부가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4일 국회와 재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7일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부대의견으로 “정부가 과표구간, 근로소득공제 등 과세체계를 경제 환경에 맞게 주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해 2월 임시국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달았다. 소득세 과표구간을 물가에 연동시키는 방안을 포함해 세율 및 과표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였다. 지난해 막판 국회에서 과표구간 3억 원 초과에 최고세율 38%를 부과하는 ‘한국판 부유세’가 통과됐지만 8800만 원 이하 과표구간은 1996년에 만들어진 뒤로 큰 변화가 없었던 만큼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정부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미 국회에서 세율 조정을 끝낸 마당에 정부가 2월까지 개편 방안을 제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월까지 정부가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한 것은 국회가 소득세법을 고치지 않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앞으로 있을 개편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그런데 국회 본회의가 상임위 의결을 무시한 채 최고세율을 신설한 만큼 의견을 개진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재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정부 방안을 제출하려면 공청회 등을 통해 전문가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야 하는데, 지금은 작년 말 개정된 법률의 시행령 만들기도 바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은 세법을 누더기로 만든 임기응변에 불과하다”며 “올 정기국회 때까지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회 자료 제출을 거부한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소득세제 개편을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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