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남 영광군 법성면 청보리 목장. 유경환 대표(55)가 축사 사이를 지나가니 누런 소들이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가 ‘이마트동’이에요. 이 소들은 사료비, 전기세, 트랙터 비용에 깔개까지 다 대형마트에서 대줘요. 소만 잘 키우면 돼요.” 유 대표가 가리키는 축사에서는 한우 약 200마리가 볏짚을 씹고 있었다. 이곳 축사에 있는 750마리 가운데 이마트동 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30%. 설을 앞두고 이마트 소 120마리를 도축해 수가 다소 줄었다.
유 대표는 지난해부터 이마트가 돈을 주면 마른 소를 사서 잘 키워주는 ‘위탁영농’을 시작했다. 하루 평균 소 키우는 비용을 산정하고, 소를 기르는 기간을 곱해 이마트에 청구하면 된다. 유 대표가 받는 몫은 오로지 소 키우는 값이다. 사료 값의 10% 안팎을 키우는 값으로 받는다.
유 대표는 “30년 동안 소 값이 오르고 내리고, 판로가 있다가 없어졌고,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며 “요즘처럼 한우 값이 떨어져도 안정된 수입원이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의 손길을 거치면 마른 소도 3∼6개월 뒤엔 튼실한 한우가 된다. 지난해 800마리를 위탁받아 키웠다. 이마트 변상규 바이어는 “시장에서 다 큰 한우를 직접 사는 것보다 8%가량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어릴 적부터 소 전문가였다. 1979년 소 100마리로 일을 시작한 뒤부터 매일 오전 2시면 일어나 우시장에 나가는 게 일상이 됐다.
하지만 1998년 한우파동이 일어났다.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다 소 10마리를 외상으로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사기였다. 소 값 2000만 원을 떼였다. 유 대표는 “믿을 수 있는 판로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인근에서 백화점에 납품한다는 축사를 찾아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차별화를 해야 외상값을 떼일 리 없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납품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2004년에 약 30억 원을 들여 약 19만8300m²(약 6만 평) 터에 소들이 뛰어놀 수 있는 목장을 지었다. 2009년 한우로는 처음으로 농림수산식품부의 ‘친환경 농장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했다. 큰돈을 들인 목장에 소를 더 늘릴 수 있었지만 위험요소가 컸다. 유 대표는 “소 값은 경험상 8년 주기로 떨어지는데, 곧 떨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해 섣불리 소를 늘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 위탁영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마트도 마침 같은 실험을 구상하고 있었다. 결국 있는 시설을 활용해 위탁영농을 하니 목장 매출은 2010년 20억 원에서 지난해 31억 원으로 늘었다. 이마트도 소를 잘 키우기로 소문난 사람에게 맡겨 유통단계를 대폭 줄였다. 한우는 농가-한우 수집상-우시장-중간도매상을 거쳐 도축되지만 위탁영농으로 도축 전 유통단계를 4단계에서 1단계로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것. 2010년 등심 100g 값은 7850원대였지만 최근 소 값이 떨어진 추세가 반영돼 지난해 9월부터 5800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이마트는 10일 유통단계를 줄이기 위해 지육(도축된 소) 경매에 직접 나서겠다고 밝혔다. 도축된 소(지육)를 가공업체까지 가져오는 과정을 줄여 추가로 한우 판매가격을 7∼10%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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