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3층 여성 의류 매장 ‘오브제’. 김희경 매니저가 연신 손짓을 하며 지나가던 한 손님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러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손님이 허공을 향해 오른손 검지를 빙글 돌렸다. 3층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다는 뜻이었다. 김 매니저는 이 손님을 ‘미스 황’이라고 소개했다.
미스 황은 이 매장에서 초우량고객(VVIP)으로 관리하고 있는 중국인 고객. 1인당 매출액이 국내 고객의 수십 명과 맞먹는 ‘큰손 단골’이다. 한 번 지갑을 열면 최소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까지 지출한다. 김 매니저는 단골 중국인 20∼30명의 명단을 작성해 집중 관리하고 있다. 호칭도 기억하기 쉽게 성 앞에 ‘미스’를 붙여 부른다. ○ ‘큰손 단골’ 겨냥 일대일 서비스
일회성 방문이 아닌 한국을 자주 찾는 ‘큰손’ 중국인이 늘자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도 일대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은행연합카드(은련카드) 사용액으로 대략의 소비 규모를 집계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단골손님을 대상으로 한 고객관리마케팅(CRM)으로까지 발전한 것. 특히 춘제(春節·21∼28일) 대목을 앞두고 중국인 관광객 4만5000여 명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백화점들은 중국인을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미샤, 타임, 오브제, 오즈세컨 등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매장별 10∼20명의 단골 고객을 관리 중이다. 매장 직원들은 VVIP들이 물건을 살 때마다 전화번호와 주소를 기록해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연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선과 반품까지 무료로 해준다. 혹시 고객이 직접 오지 못할 경우 마네킹에 신제품을 입힌 사진을 보내는 것도 매장 직원의 몫. 김 매니저는 “요즘에는 워낙 자주 오는 ‘큰손’이 많아 구매 후 관리의 필요성이 늘었다”며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고객이 많은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는 지난해 여름부터 연 2회 이상 방문하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회원가입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름, 휴대전화 번호, e메일을 비롯해 구매기록과 개인의 피부 타입도 적어 둔다. 이런 식으로 관리 중인 우수 고객만 100여 명이다. ○ 신상품 안내와 수선,통역서비스까지
갤러리아백화점도 단골 중국인을 위한 ‘스킨십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통역만 해주던 직원들이 이제 중국인 고객들의 관광 도우미 역할까지 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자주 찾는 중국인 고객들은 친분을 쌓은 통역 직원에게 전화해 괜찮은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본점도 층별로 중국어 통역 직원을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구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고객과 동행하는 안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외국어가 가능한 엘리베이터 안내요원 3명도 채용했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단골 중국 손님을 대상으로 한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쇼핑 도우미)’ 서비스까지 고려 중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백화점들은 적극적인 할인 혜택을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은 처음으로 17, 20일자 중국 런민(人民)일보에 5단 크기의 모객(募客) 광고를 냈다. ‘새해에도 더욱 믿을 수 있는 롯데백화점으로 오라’는 내용과 함께 경품 행사의 내용이 실려 있다. 롯데백화점은 은련카드 고객 중 구매력이 높은 플래티넘 회원을 대상으로 올 한 해 동안 구매하는 금액에 맞춰 상품권을 증정한다. 현대백화점은 20만 원 이상 구매할 경우 구매액의 5%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증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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