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맥도널드 이사회는 2004년 짐 캔털루포 회장이 심장발작으로 갑자기 숨진 뒤 2시간 만에 새 최고경영자(CEO)를 뽑았다. 제너럴일렉트릭(GE)에는 CEO가 트럭에 치였을 때 뒤를 이을 사람의 순서를 적은 ‘트럭 리스트’가 있다. 한국에선 이런 논의 자체가 금기다.”
김종열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후 후계구도에 관한 구구한 해석이 나오자 한 시중은행 임원이 한 말이다. 전문가들은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에 이어 하나금융에서도 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지자 원인을 3가지로 제시한다. 한국 기업의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도입이 걸음마 단계이고 △1인자가 지배주주나 권력층 등 소수 이해관계자에게 휘둘릴 때가 많으며 △2인자 역시 ‘2인자와 후계자는 다르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사관리(HR) 컨설팅회사인 머서코리아의 박형철 대표는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은 기업 규모가 급속히 커진 20세기 경영의 산물이지만 한국 금융회사들은 2000년대에야 이를 도입한 데다 그나마 ‘껍데기’만 들여왔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승계 후보군에 회사 안팎에서 신망을 받는 인물들이 뽑힐 때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후보군 자체가 1인자나 특정주주의 뜻에 따라 형성돼 조직원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2인자가 당연히 CEO를 승계한다는 오해도 종종 갈등을 일으킨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2인자와 후계자는 다르다”며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행 역할을 한 국무총리가 다음 대통령이 되지 못할 때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류중일 삼성 라이온스 감독이 2011년 감독 데뷔 첫해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도 선수와 코치 시절을 합해 24년간 삼성에 몸담으며 차근차근 감독 수업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금융회사들이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CEO 후보군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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