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선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2월과 3월 사이에 패션브랜드 자라는 커피빈 자리에, 에잇세컨즈는 네스카페 자리에 새로 매장을 연다. 스파이시컬러는 분식점 스쿨푸드가 있던 곳에, 라코스테는 커피숍 겸 꽃집인 블룸앤구떼 자리에 들어온다. 식음료 매장이 있던 자리에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본보 21일자 2면 글로벌 패션기업의 ‘안테나 스트리트’ 된…
올봄 이곳에 매장을 여는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가로수길이 일본의 하라주쿠나 뉴욕의 블리커스트리트가 겪었던 발달 단계를 똑같이 밟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들이 모인 거리에 △맛집이 생겨나 입소문이 나고 △대중적인 커피숍이 증가한 뒤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브랜드의 대형 매장이 들어서는 순서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자본을 내세운 국내외 패션 브랜드가 가로수길을 하나 둘 점령해 나가면서 기존 세입자와 건물주 사이의 갈등도 종종 벌어진다. 수요가 늘면서 최근 2년 새 임대료가 5∼10배 상승하자 건물 주인들이 자본력을 갖춘 브랜드를 들이려 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로수길이라는 개성 있는 거리를 만든 것은 작은 패션숍과 식당을 운영해 온 기존 세입자들”이라며 “몇 년 새 크게 늘어난 권리금을 챙길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은 원래 ‘소박한 DNA’를 간직한 거리였다. 화랑(畵廊)거리로 불리던 곳에 1995년경부터 젊은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숍들이 들어서면서 특유의 개성이 꽃피게 됐다. 일부 디자이너는 이곳에서 기본기를 다진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기자가 2001년 이 거리를 취재하면서 만난 디자이너 정욱준 씨가 지난해 프랑스 고급 브랜드 ‘니나리치’의 국내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게 좋은 예다.
이제 가로수길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엔 ‘몸값’이 너무 비싸졌다. 명동처럼 덩치만 크고 개성은 없는 거리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로수길이 글로벌 자본이 눈여겨보는 뜨거운 상권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상권 자체가 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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