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노는 스펙과 실무능력… ‘기업 현장교육’에 길이 있다
[‘공존 자본주의’에서 길을 찾다]<8>일자리 ‘미스매치’를 없애자 (下)극복 노력들
《동아일보는 학벌 학점 토익 등 ‘스펙’을 둘러싼 기업과 취업 준비생의 엇갈린 인식 등 ‘일자리 미스매치’ 현실을 25일자에 보도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스펙보다 직무역량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주문했지만, 취업 준비생은 “스펙을 쌓아야 서류전형이라도 통과한다”고 맞섰다. 현실적으로 구직자들이 스펙을 무시하고 직무역량을 쌓는 데 주력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업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이 스펙과 무관하게 인재를 뽑되 직무역량을 갖춰주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하는 데서 취업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동아일보는 서비스기업 ‘준오헤어’와 제조업체 ‘대우조선해양’의 직무교육시스템을 취재했다. 두 회사는 △직접 개발한 차별화된 교육과정으로 ‘백지 상태’인 입사자들의 직무역량을 키웠고 △사내 교육 과정을 수료한 이들을 고위임원으로 승진시키는 인사체계로 입사자들의 미래를 보장했으며 △대학에 진학한 동년배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먼저 성공할 수 있도록 경력을 관리해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 프랜차이즈 미용실 준오헤어의 ‘준오 아카데미’
“최소 2년 7개월 스파르타 훈련 통과하면 억대 연봉”
2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미용실 준오헤어 압구정로데오 2호점. 170cm가 넘는 키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수려한 외모의 수습사원 김아라 씨(21·여)에게 악수를 청했다가 손에 닿는 감촉에 깜짝 놀랐다. 김 씨의 손바닥은 하얀 각질로 뒤덮여 있었고, 10개의 손가락 중 4개의 손가락 끝이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아프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김 씨뿐 아니라 준오헤어 교육생 대부분의 손은 샴푸, 린스, 파마약, 염색약 등 ‘지독한’ 화학약품과 수시로 접촉해 성할 날이 없다.
고달픈 교육생 시절을 거쳐 정직원이 된 정희린 씨(30·여)는 “추운 겨울이면 더 흉하게 부어오르는 손을 잡고 서러운 마음에 울기도 했고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며 “하지만 헤어디자이너로 성공한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혹독한 시간을 이겨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 미용대회 수상경력? 필요 없다
준오헤어는 1979년 1호 매장인 서울 성북구 돈암점에서 시작해 올 1월 현재 75개의 직영매장을 운영하는 미용서비스업체다. 전 세계 미용실 프랜차이즈 중 직영매장이 가장 많다고 한다. 전체 직원 2000여 명 가운데 경영지원 업무를 맡은 ‘매니저’가 200여 명, 수습사원 900여 명, 정직원(스타일리스트)은 900여 명이다. 정직원 중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은 약 250명으로 전체의 25%가 넘는다. 30대 중반으로 연봉이 4억 원이 넘는 사람도 있다.
정직원이 되기 위해선 철저히 실무 중심으로 구성된 이 회사 고유의 교육과정인 ‘준오 아카데미’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준오 아카데미는 회사에서 쓸 인재를 직접 키우기 위해 만들었다.
선배가 강사로 나서 6개월 단위로 드라이 파마 염색 커트 등 미용 과목을 가르치고, 단계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같은 시험을 치르게 한다. 시험에 합격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전 과정을 끝내는 데 최소 2년 7개월에서 최대 4년까지 걸린다. 이 기간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남짓. 오전 7시 30분∼9시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준오 아카데미 교육장에서 수업을 받고, 오전 11시∼오후 7시는 수도권의 각 매장으로 흩어져 정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한 뒤 오후 8∼11시에는 매일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숙제도 한다.
준오헤어 관계자는 “미용 분야에 대한 사전지식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교육생은 평등하고,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 과정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 경영임원-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준오헤어는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해 능력에 따라 고위 임원으로까지 승진시키는 미국의 맥도널드처럼 아카데미 출신을 중용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경영직인 매니저는 미용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평생 동안 회사에서 경력을 관리한다. 기술직인 헤어디자이너에게는 미용기술을 재교육하고 고위임원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각종 리더십 교육을 제공한다.
정 씨는 “회사 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언젠가는 경영에 참여하는 리더가 되거나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며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믿음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 대우조선해양의 ‘중공업 사관학교’
“고졸 채용해 4년간 교육… 대졸 신입과 같은 대우”
“지금까지 우리 회사에 이런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오늘 토론한 내용을 사내신문에 소개해 선배들과 공유할 생각입니다.”
16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 교육장. 이 회사 인사총무팀 이재원 부장의 ‘회사의 핵심가치’ 강의가 한창이었다.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4명의 고등학생은 색색의 펜으로 강의 내용을 열심히 필기했다. 토론이 벌어지자 학생들은 질세라 손을 들었다. “선배들은 시켜도 우물쭈물하는데 여러분은 참 열정적이네요.” 이 부장의 말에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국내 최초로 고교 졸업자들을 입사시킨 뒤 4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중공업 사관학교’를 열었다. 이날은 중공업사관학교 1기생이 입소한 지 2주째였다. 가르치는 강사도, 배우는 아이들도 모두 들떠 있었다.
○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직접 키우자
이영만 중공업사관학교장(부사장)은 “실제 면접관으로 참여해보면 꼭 필요한 공부는 부족하고, 필요 없는 것은 과도하게 준비한 지원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선 고등학교만 나와도 석박사급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어학능력을 갖춘 인재가 많다”며 “화려한 스펙이 없는 고졸자도 성공할 수 있도록 기존의 틀을 깨자는 데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중공업사관학교 교육과정을 거치고 나면 대졸 신입직원과 같거나, 평가 결과에 따라서는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된다. 부산 사상고 졸업을 앞둔 황기욱 군(19)은 “회사가 교육해주면서 대우는 대졸자와 같게 해준다고 하니 굳이 대학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거제 중앙고 출신의 고우휘 양(19)도 “논술학원을 다니면서 국내 상위권 대학 진학을 준비했지만 어느 순간 스펙에 매달리는 대학생활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지원했다”며 밝게 웃었다.
○ 실무와 이론을 접목한 커리큘럼
지난해 하반기 사관학교 개설이 가시화되면서 인사총무팀 7명은 바빠졌다. 조선과 해양공학 분야에 강점이 있는 부산대와 한국해양대, 서울대를 직접 찾아가 담당 교수들을 만났다. 학생들이 어떤 커리큘럼을 통해 공학을 배우는지 살폈다.
하지만 단순 이론 수업만 하면 대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선공학을 전공한 실무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론과 실무를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지 조언을 들었다. 여기에 공학박사 출신의 컨설턴트까지 한 명 고용했다. 공학 수업 구성이 무리 없이 잘 짜였는지, 애초 대우조선해양이 원했던 방향으로 수업이 흘러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전공에만 밝은 인재를 키우는 건 아니다. 4주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조선해양공학개론과 일반물리학 등 공학 분야 외에 ‘명저 읽기’ ‘현대미술의 이해’ 등의 과목도 가르친다. 외국 거래처 직원들과 자유롭게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문학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게 인문교육의 목표다. 매주 수요일에는 명사들의 특강을 연다. 한 달에 두 번은 악기를 배우고, 축구와 농구 등 스포츠 종목도 가르친다.
인사총무팀 이동철 전문위원은 “처음에는 ‘대졸 신입사원도 한 달밖에 교육을 안 시키는데 고졸자 대상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며 시간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의아해하던 경쟁사들이 지금은 커리큘럼에 관해 문의해 온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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