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덩치는 커졌지만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부실한 이사회 운영, 대주주에 치우친 배당 등 경영 건전성은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16개 그룹의 경영 건전성은 100점 기준으로 낙제점 수준인 42점에 그쳤다.
동아일보 경제부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원장 강병호)과 공동으로 20대 그룹 중 총수가 있는 16개 그룹의 주주권리 보호, 이사회, 공시, 감사기구, 배당(경영과실 배분) 등 5개 분야의 경영 건전성을 측정한 결과 42.1점에 그쳐 4년 전인 2007년(46.2점)보다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지배구조원은 2002년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이 공동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매년 지배구조 우수 기업을 선정하고 있다.
5개 분야 중 배당은 22.2점, 이사회 운영은 28.9점, 공시는 35.3점에 그쳤다. 공시 건전성은 2007년 45.7점에서 지난해 35.3점으로 10점 이상 떨어져 가장 후퇴한 항목으로 꼽혔다. 그룹별로 60점을 넘긴 곳은 두산 한 곳뿐이었고, 나머지 15개 그룹은 50점을 넘지도 못했다. ○ ‘빅4’ 그룹도 기대 이하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빅4’ 그룹도 경영 건전성 측면에서는 ‘이름값’을 못했다. 삼성은 4위, 현대차는 7위, SK는 2위, LG는 3위에 올라 겉으로 나타난 순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차를 제외하고는 2007년보다 경영 건전성 점수가 깎였다.
삼성은 2007년 49.0점에서 2011년 43.8점으로 내려갔다. 점수 하락의 주원인으로는 내부거래가 꼽혔다. 자기자본 대비 출자총액 비중이 2007년 10.5%에서 2011년 57.6%로 5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전체 매출액과 매입액에서 계열사 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9.0%, 73.7%로 증가했다. SK는 배당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전체 2위를 차지했지만 주주권리 보호 부문에선 10위에 그치는 등 개선해야 할 항목이 많았다.
빅4 중 점수가 크게 떨어진 LG는 허술한 공시가 발목을 잡았다. 대표적으로 LG전자가 지난해 11월 초 유상증자를 ‘뒷북 발표’해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현대차는 점수가 올랐지만 부실한 이사회는 개선해야 할 항목으로 지적됐다. HMC투자증권을 제외한 전 계열사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지 않았고, 경영 성과를 측정하고 성과급 등의 보상수준을 결정하는 보상위원회도 없었다.
○ 그룹 간 경영 건전성 격차 더 벌어져 현대차 외에 두산, 동부그룹도 경영 건전성 점수가 올라갔다. 삼성 등 나머지 13개 그룹의 점수가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이들 3개 그룹과의 점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부동의 1위를 지킨 두산과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 롯데의 점수 차는 27.5점으로 2007년(17.3점)보다 10점 이상으로 벌어졌다.
61.3점으로 1위를 차지한 두산은 각 계열사 이사회에 내부거래위원회를 뒀다. 의무적으로 두는 조직은 아니었지만 이 위원회를 통해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사전 심의함으로써 계열사 간 거래의 투명성을 높였다. 이 덕분에 자기자본 대비 계열회사에 대한 지급보증 또는 담보 제공액이 2007년 0.07%에서 2011년 0.014%로 감소했다.
33.8점으로 조사 대상 16개 그룹 중 최하위인 롯데는 감사기구, 이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주주총회에 전자 또는 서면 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으며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나 보상위원회도 없었다. 사외이사 비중은 법적 기준인 25%를 겨우 충족하는 수준이었다.
GS, STX, 한진, CJ, 금호 등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STX와 GS는 높은 내부거래 비중이 발목을 잡았다. GS아이티엠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아들 허윤홍 씨 등 허씨 일가 18명이 93.34%의 지분을 보유한 정보처리 서비스 업체다. 이 회사가 2010년 거둔 매출 1012억 원 가운데 817억 원이 계열사를 통한 매출이었다. 강덕수 STX 회장의 두 딸이 대주주로 있는 STX건설의 2010년 계열회사를 통한 매출 비중도 51.4%나 됐다. 오덕규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선진국 대기업들은 통상 건전성 점수가 60점을 넘는다”며 “경영 건전성은 결국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경영자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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