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짝퉁 대부업체, 사라졌나 했더니…

  • Array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 “생활비 100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대출 가능한가요?”
“네 가능하긴 한데…. 어디서 정보를 얻어 우리에게 연락한 겁니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연락처를 알게 된 경위를 계속 추궁하듯 물었다. 》
“전단지를 주운 뒤 휴대전화에 번호를 저장해 놨다”고 하자 의심이 다소 풀렸는지 “이름이랑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기자는 “거기 미래에셋○○○○ 맞죠?”라고 물어봤다. 상담자는 놀란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맞다”고 했다. 그는 “100만 원 이상 대출도 가능하다”고 적극 영업에 나섰다. 서울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 대부업체는 2010년까지는 정식 등록된 ‘합법’ 대부업체였지만 지금은 미등록 상태인 불법 업체였다.

○ 비슷한 이름 275개서 160개로 줄어


유명 금융회사와 비슷한 이름을 내건 대부업체가 통계상으로는 줄어들고 있지만 상당수 업체들은 미등록 상태로 불법 영업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업체들은 불법인 만큼 높은 이자를 요구하거나 수수료만 떼먹고 연락을 끊는 식의 대출사기를 벌일 소지가 높아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동아일보 경제부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지난해 11월 현재 ‘대부업체 등록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등록 대부업체 5200여 개 중 유명 금융회사 11곳과 비슷한 이름을 쓰는 업체는 160개에 이르렀다. 이는 앞서 2010년 4월 당시 서울시 등록 대부업체 6500여 개 중 유명 금융회사 이름을 갖다 썼던 275개보다 115개 줄어든 수치다.

유명 금융회사의 상호를 쓰는 대부업체가 줄어든 것은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규제에 나선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유명 금융회사의 계열사인 줄 알고 일부 대부업체에 연락했다가 높은 이자를 물거나 대출사기를 당하는 서민이 크게 늘자 ‘눈속임 광고’를 규제하기 위해 대부업체나 대부중개업체가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할 때는 ‘대부’ 또는 ‘대부중개’라는 단어를 상호에 꼭 넣도록 법률을 고치고 단속도 적극적으로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경제부가 2010년 당시의 전화번호를 토대로 60여 개 대부업체를 추적한 결과, 이 가운데 10여 곳이 ‘미래에셋○○○○’, ‘우리○○’ 등으로 유명 금융회사의 상호를 쓰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상호를 밝히지 않는 등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이내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통화가 되지 않은 나머지 업체 50여 곳도 전화번호만 바꾼 채 영업을 하고 있을 소지가 높다.

○ 점조직으로 단속도 어려워


직장인 A 씨는 지난해 6월 ‘우리파이낸셜’이라는 업체에서 연리 7%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자녀 학자금이 필요했던 A 씨는 700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 상담원은 “신용등급이 좋지 않아 보증 보험료가 필요하다”며 55만 원을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돈을 보내도 대출금이 들어오지 않아 직접 찾아가봤더니 ‘유령 업체’였다. 수수료만 떼먹고 달아나는 전형적인 대출사기를 당한 것.

이처럼 서민의 피해가 우려되지만 불법 대부업체들은 대부분 점조직으로 은밀히 운영돼 단속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부분 ‘대포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뿌리며 영업을 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다”면서도 “광고 단계부터 단속을 강화하고 불법으로 사용된 대포폰을 신속하게 정지시킬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허자경 인턴기자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