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1990년 중후반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를 붙들고 증권사 직원과 실랑이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 한 분은 수업시간이나 시험 감독 중에도 전화로 거래 주문을 넣느라 수차례 교실을 들락날락거렸던 기억이 있다.
요즘 들어 이런 광경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1997년 처음 시장에 선보인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2000년대 들어 인터넷 확산과 함께 널리 보급되면서 굳이 증권사 직원을 통하지 않아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주식을 사고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주식 거래가 크게 늘어 올해 1월 무선단말기를 통한 주식 거래 비중이 전체 거래의 12%를 차지했다. 증시가 열리는 시간이면 사무실이든 지하철이든 관계없이 원하는 거래를 할 수 있으니 개미들은 그야말로 ‘정보기술(IT)의 축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개인투자자들에게 IT의 축복만 내려진 것일까?
얼마 전 서울 여의도에서 지인과 점심을 먹으며 씁쓸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코스닥지수와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주가를 확인하느라 식사 내내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필자가 답답한 마음에 ‘만날 주식만 보고 있느냐’고 묻자 ‘쉬는 시간이나 이동할 때 챙겨 본다’고 답했다. 결국 오후 3시 장이 마감할 때까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주식 투자에 신경을 쏟는 셈이다.
비단 필자의 지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공공기관 직원들이 근무 중 주식거래를 일삼아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는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카페에도 주식 관련 글들이 넘쳐난다. IT 기기가 개미들에게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준 반면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돈 버는’ 데에만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일반인으로서는 딱히 자산 증식의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개인들이 재테크의 하나로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결코 나무랄 수는 없다. 차트만 오래 들여다봐도 누구나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더욱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가시간은 물론이고 화장실에서조차 스마트폰 주식 애플리케이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면 그것은 IT 기기가 주식 투자자들에게 채운 ‘족쇄’인 셈이다.
취재 중에 만난 펀드매니저의 말처럼 주식 투자의 기본 원칙이 ‘시장이 아닌 기업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개인들도 주식의 굴레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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