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본하면 떠오르는 상품은?’이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아마 십중팔구 ‘소니 워크맨’이나 ‘코끼리 밥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어디 갔어, 어디 갔어? 이거, 이거 다 어디 갔어?”라는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처럼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다.
반면 조금 느리게 바뀐 것들도 있다. 일본의 전자제품과 함께 세계로 퍼져나간 스시, 우동, 사케는 과거보다 더 강력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생선을 날로 먹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던 서양 사람들은 이제는 스시를 고급음식 문화로 인정한다. 입맛을 길들이는 일은 어렵지만 한번 바뀐 입맛은 오래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자제품, 자동차, 석유화학 제품 등 국산 제품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 식품 기업들도 네슬레나 펩시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며 조용히 글로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 러시아 입맛 사로잡은 오뚜기
러시아는 날씨가 추운 탓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다양한 음식 소스류 제품 중에 마요네즈의 인기가 높은 나라다. 육류, 과자, 빵을 찍어 먹는 것은 물론이고 라면이나 수프에조차 마요네즈를 넣어 먹을 정도다. 오뚜기 마요네즈는 바로 이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1위 제품이다.
수출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러시아 정서에 맞춰 포장과 맛을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오뚜기는 국내에서 인정받은 제품을 그대로 수출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결과는 대(大)성공이었다. 오뚜기 제품 특유의 고소한 맛이 큰 반향을 일으킨 데다 내수용과 같은 제품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고객의 신뢰도도 높아진 것이다.
파리바게뜨라는 브랜드로 국내 베이커리 업계를 평정한 SPC그룹은 기세를 몰아 아시아 정벌에 나섰다. 현재 중국에 74곳, 미국에 18곳의 매장을 운영 중인 SPC는 다음 달에는 베트남에도 1호점을 낼 예정이다. SPC는 베트남을 교두보 삼아 동남아 시장에 대한 적극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매장도 현지인 중심으로 고객층이 형성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에도 무난하게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SPC는 자신하고 있다.
○ 한국에서 통하면 해외에서도 통한다
‘우유를 넣은 커피’라는 홍보로 국내에서 대박을 터뜨린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커피믹스도 해외에서 잘나가는 제품이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5월 프렌치카페 커피믹스 100만 달러어치를 중국에 수출했다. 우리나라 방송에도 종종 소개될 정도로 황당한 식품 안전사고가 잦은 중국에서 진짜 우유를 넣은 건강한 제품이라는 남양유업의 홍보전략이 먹혀들어간 덕분이다. 프렌치카페 커피믹스는 미국, 호주, 카자흐스탄 등으로 수출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동서식품의 크리머 제품 프리마는 지난해부터 식품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일본의 대표적 커피 기업 아지노모토 제너럴푸드(AGF)사를 통해 8년간 3만6500t, 금액으로는 1억25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기로 한 것이다. 프리마는 1974년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순식물성 커피 크리머로 1982년부터 해외수출을 시작해 현재는 러시아, 대만, 싱가포르 등 20여 개 국가에 수출되고 있는 제품이다.
CJ제일제당의 히트상품 햇반도 해외에서 인기 있는 상품이다. CJ는 차진 식감을 선호하는 국내와 다른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미주와 유럽 등지로 햇반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 시장에서는 코스트코 매장을 통해 햇반을 판매해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600만 달러어치 이상을 팔아치웠다.
○ 한국 술맛에 반한 세계
우리나라 술도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국순당은 막걸리 시장을 동남아로 확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회사는 동남아 시장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거쳐 현지인의 입맛에 맞도록 단맛이 강하고 도수가 낮은 막걸리를 개발했다. 더운 지방에서 막걸리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리핀에서는 생막걸리 전용 냉장차량을 통한 배송시스템도 갖추었다. 하이트진로는 56개 국가에 74종류의 브랜드로 주류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일본 시장에서는 맥주와 막걸리를 합쳐 지난해 750억 원가량을 판매했다. 맥주 브랜드 ‘드라이 피니시 d’는 2014년 이전에 일본 수입맥주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호주 시장에서 ‘클린스킨’이라는 브랜드로 판매 중인 이 회사의 맥주는 지난해에 전년 대비 350%라는 폭발적인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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