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사진 왕국서 ‘추억의 사진’으로… 코닥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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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6일 03시 00분


코닥의 주력 상품이었던 컬러필름. 2009년 생산이 중단됐다.
코닥의 주력 상품이었던 컬러필름. 2009년 생산이 중단됐다.
1888년 탄생한 코닥은 사진의 대명사였다. 1900년 내놓은 ‘브라우니’라는 1달러짜리 카메라로 인기를 끌었고 1935년 처음으로 컬러필름 ‘코다크롬’을 내놓았다. 1969년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찍은 것도 코닥 카메라였다. 1980년대까지 코닥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르렀다. 세계 5대 브랜드 중 하나였던 코닥이 1월 19일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소중한 순간을 ‘코닥 모멘트’라고 불렀고 전 세계인에게 단순한 상품이 아닌 추억을 파는 기업이었던 코닥이 파산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닥의 몰락 원인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위기감을 느낀 코닥도 기업을 살리기 위해 1990년대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코닥은 자신들이 개발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이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 실패했고 성공의 덫에 빠졌으며 사진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 디지털 카메라와 와해성 기술

역설적이게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든 곳은 코닥이었다. 그러나 1975년 연구소에서 개발된 이 신기술에 대한 코닥 임원진의 반응은 싸늘했다. “좋기는 한데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세요.” 개발 초기 단계였던 디지털 카메라 기술은 당시의 아날로그 사진 기술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필름이 필요 없는 카메라였다. 필름으로 돈을 버는 코닥에 디지털 카메라는 회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기술이었던 셈이다.

결국 코닥은 다른 기업이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기 시작한 1994년에서야 부랴부랴 디지털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일찍부터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캐논과 니콘 등에 밀렸다. 코닥의 디지털 카메라는 예쁘고 깜찍한 다른 제품에 비해 디자인이 투박했고 적목 현상 없애기, 얼굴 인식 등 다른 업체 디지털 카메라에 있는 다양한 기능도 없었다. 1991년 190억 달러에 이르던 매출은 2010년 72억 달러로 추락했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후반 10년 동안 코닥의 주식 가치는 75%나 떨어졌다.

코닥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가 저서 ‘혁신가의 딜레마’에서 지적한 대로 선도 기업이 후발 기업에 밀려 시장지배력을 상실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코닥은 그들이 잘 만들고 대다수의 소비자가 사용하고 있는 필름을 더 잘 만드는 데 집착했다. 디지털 카메라 기술이 기존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혀 다른 기능을 요구하는 새로운 고객이 원하는 와해성 기술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 성공의 덫

1975년 코닥이 처음 개발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토스터만큼 크고 사진 한 장을 기록하는 데는 23초가 걸렸다.
1975년 코닥이 처음 개발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토스터만큼 크고 사진 한 장을 기록하는 데는 23초가 걸렸다.
코닥은 사진기를 싸게 파는 대신 필름을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남기는 사업 모델로 성장했다. 이윤이 많이 남는 필름에 치중하면서 카메라와 같은 장치보다는 필름에 강한 면모를 보인 뼛속까지 필름 기업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이미지 그룹으로 거듭나려는 전략을 폈지만 근본적으로는 필름을 토대로 디지털에 발만 담그는 전략을 고수했다.

이러한 코닥의 행보를 설명하는 이론은 많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임스 마치 교수는 이를 ‘근시안적 학습과 성공의 덫’으로 표현했다. 기존 성공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불연속적이고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가 일어나면 기업은 갑작스레 붕괴한다는 것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 도널드 설 교수의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 이론에 따르면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시장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 성공의 발자취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성향을 보인다.

○ 시장 환경의 근본적 변화

소비자들이 찍은 사진을 그냥 지워버리거나 인쇄하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것도 코닥의 패착이다. 1990년대까지 소비자들은 코닥의 필름으로 사진을 찍은 뒤 코닥의 인화센터에서 사진을 인화했다. 그러나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은 코닥의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찍은 사진의 극히 일부만 인화하기 시작했다.

코닥은 2001년 오포토(ofoto)라는 사진 공유 사이트를 인수했다. 하지만 주로 온라인에 기반한 사진 인화 주문 사이트로만 활용했다. 만약 코닥이 미래를 내다보고 이 사이트를 사진을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키웠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 계속된 전략의 실패

코닥은 2007년 잉크젯 프린터 사업을 주력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한다. HP 등 대부분의 프린터 업체들은 프린터를 싸게 파는 대신 잉크를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고 있었는 데 반해 코닥은 프린터의 가격을 올리는 대신 잉크를 절반 가격에 팔겠다고 발표했다. 이 전략도 실패로 돌아갔다. 소비자들은 초기에 프린터를 살 때의 가격에 집착하지, 프린터를 소유하는 동안 들어가는 총 소유 비용은 잘 따지지 않았다. 거의 모든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들어가면서 어렵게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안착한 코닥은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TIP:: ‘와해성 기술’ 5가지 대응전략▼

수없이 개발되는 신기술 중에 어떤 기술이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인지 파악해서 대응전략을 수립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조지프 보어와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이 199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쓴 ‘와해성 기술: 흐름을 잡는 법’에 제시된 대응책은 기업의 전략 수립과 실행에 큰 도움을 준다. 이들이 소개한 팁은 다음과 같다.

①해당 기술이 와해성 기술인지 존속성 기술인지 판단하라

대다수의 기업은 현재의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존속성 기술은 잘 인지하지만 와해성 기술을 인지하는 데는 서투르다.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마케팅이나 재무부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면 기술부서가 반기는 프로젝트 중에 눈여겨볼 만한 와해성 기술이 있다.

②와해성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을 판단하라

와해성 기술 후보 중에 기술 수준이 지금은 매우 낮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서 현재 주력 제품 시장의 기술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보이면 그 후보 기술은 개발해야 한다.

③와해성 기술을 적용할 만한 시장을 찾으라

기업 조직은 현재의 주력 시장에 집중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새로운 시장 탐색 능력이 더 뛰어난 중소기업들에 시장 탐색을 맡기되 그 기업들을 계속 해서 눈여겨보라.

④별도의 조직이 와해성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라

와해성 기술이 이윤이 적고 기존 제품과는 다른 고객군을 대상으로 할 때는 별도의 조직에서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⑤와해성 기술 관련 조직은 계속 독립적으로 놔두라

기업들은 별도로 뒀던 와해성 기술 관련 조직이 성공하면 다시 합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 경우 기존 사업부문과의 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다. 역사적으로 디스크 드라이브 업계에서 주력 제품과 와해성 기술 제품을 한 조직 내에서 관리한 기업은 모두 실패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9호(2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구독 문의 02-2020-0570

‘형식학습’ 한계 돌파 방안

▼ 스페셜 리포트/갈수록 짧아지는 지식 유효기간, 무형식 상시 학습체제가 대안마라


이제까지 기업은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규격화된 틀을 만들어 별도로 실시하는 형식 학습(formal learning) 체계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형식 학습으로만 이뤄지는 교육은 제때 받기 어렵고 교육 내용을 곧바로 현업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방법이 일상적인 업무수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무형식 학습(informal learning)이다. 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가운데 지식 및 정보를 습득하는 무형식 학습의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분업-전문화’ 새 트렌드

▼ 하버드비즈니스리뷰/초(超)전문화 시대


미국 코네티컷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개발사 톱코더는 분업의 극한을 보인다. 수주한 정보기술(IT) 프로젝트를 수백, 수천 개의 작은 단위로 쪼갠다. 쪼갠 업무를 전 세계 프리랜서 개발자들에게 던져 경쟁하도록 한다. 가장 기초가 되는 시스템이 선정되면 다른 개발자들이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시스템 구조를 설계하기 위해 또 경쟁한다. 각 부문이 완성되면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대회가 열린다. 톱코더의 사례는 점점 분업화하고 부문별로 전문화하는 근로의 새로운 흐름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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