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울산공항에서 약 25km 떨어진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온산공업단지. 약 80개의 크고 작은 금속·화학 관련업체가 모여 있다. 부품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은 쉴새없이 울산항과 공단 사이를 오갔다. 공단 한편에는 현장 근로자 수 300여 명의 자동차 주조 부품 전문업체인 동남정밀 공장이 있다. 자동차 변속기용 케이스를 현대·기아자동차 등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협력업체다. 이 공장 직원들은 최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부가 휴일특근을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경영자는 납품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근로자는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 주말근무 사라지면 제때 납품 못해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쇳물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분주히 주물기계를 작동시키고 지게차는 바쁘게 부품을 실어 날랐다. 쇳물을 틀에 부어 부품을 만드는 주물제조의 특성상 열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공장은 주·야간 맞교대로 24시간 돌아간다. 토요일은 물론이고 월 1, 2회는 일요일에도 공장을 가동한다. 직원의 연령층은 대부분 50대 안팎. 외국인 노동자도 적지 않다.
이 회사 이광표 사장은 최근 고민이 늘었다. 정부 입법으로 휴일특근이 사라지게 되면 사실상 고객사 납품 물량을 맞추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원을 더 뽑고 싶어도 일이 고되다는 이유로 구직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막 새 공장을 준공한 상태여서 당장 생산설비에 추가로 투자할 여력도 없다. 이 사장은 “결국 중소업체들은 납품 능력이 떨어져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최악의 경우 중국 현지법인 공장으로 생산량을 넘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생활고를 걱정하고 있다. 이곳 근로자들은 월평균 4회의 특근을 하며 25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특근을 하지 못하면 수당이 빠져 월급이 150만 원 수준으로 줄어들 판이다. 한 현장 근로자는 “당장 회사가 존폐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완성차업체 노조처럼 ‘근로시간은 줄어도 임금은 보전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지 않으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 “취지 동감하지만 시기상조”
같은 날 경북 경주의 부품업체인 광진상공. 현대·기아차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에 자동차 문을 여닫는 데 필요한 부품을 집약한 ‘도어 모듈’을 공급하는 업체다. 다음 달부터는 독일 폴크스바겐에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으며 일본 미쓰비시와도 계약을 진행 중이다. 독일 브로제, 일본 하이렉스 등 쟁쟁한 해외 동종업체와 경쟁해 거둔 성과다. 성과는 기쁨에서 걱정으로 바뀌었다. 주 5일 근무로는 도저히 납기를 준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 공장장인 권영만 이사는 “갑자기 생산효율성을 30% 올려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협력사가 부품을 원활히 공급하지 못하면 완성차업체도 생산 차질을 겪을 수밖에 없어 결국 해외 부품업체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이 옳은 방향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감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특근을 없애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노동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 여유가 부족한 중소기업이 정책에 맞춰 갑자기 설비나 채용을 늘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 측은 “근로시간 단축은 각 기업이 처한 현실을 감안해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며 “노동력의 유연성을 개선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