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와인 시장, 소맥 폭탄 맞고 ‘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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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4일 03시 00분


와인업계는 소맥에 빼앗긴 젊은 고객들을 되찾기 위해 양이 기존 와인의 절반 수준이어서 연인끼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하프 보틀’ 와인(가운데)과 알코올도수를 낮춘 ‘저도 와인’ 등의 마케팅에 힘쓰고 있다. 각 업체 제공
와인업계는 소맥에 빼앗긴 젊은 고객들을 되찾기 위해 양이 기존 와인의 절반 수준이어서 연인끼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하프 보틀’ 와인(가운데)과 알코올도수를 낮춘 ‘저도 와인’ 등의 마케팅에 힘쓰고 있다. 각 업체 제공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이 음주 문화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와인 인기가 빠른 속도로 식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한국무역협회와 와인업계에 따르면 와인 국내 수입액은 2008년 1억6651만 달러(약 1873억 원)로 최대를 기록한 뒤 2009년에는 1억1245만 달러(1265억 원)로 무려 32.5% 감소했다. 와인 수입액은 지난해에는 1억3208만 달러(1486억 원)로 늘어나는 등 수치상으로는 반등했지만 와인 수입업체들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 와인 수입업체 홍보 담당자는 “‘소맥이 소주보다 목 넘김이 좋다’는 평이 돌면서 요즘 대학가 주점에선 여학생끼리 모인 테이블에서도 소맥 폭탄주가 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상황을 바꾸고 싶어도 마케팅 비용이나 회사 덩치에서 워낙 차이가 큰 소주, 맥주 업체와 정면으로 경쟁할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와인을 ‘미끼상품’으로 활용하려는 대형마트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며 마진이 크게 줄어든 점도 불황의 원인으로 꼽힌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을 높이려면 거래처를 다양화해야 하지만 와인 소매상 대부분이 2009년 이후 불황으로 문을 닫아 대형마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매출은 다소 늘었지만 여전히 체감경기는 2008년의 7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선금을 주고 구입하는 선물(先物) 거래인 ‘앙프리뫼르’ 매출은 이 같은 와인 시장의 급속한 위축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앙프리뫼르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신동와인은 지난해 현대백화점의 주요 점포에 입점한 매장을 포함해 전국 매장에서 단 13병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이 회사가 21세기 최고의 빈티지(와인 생산연도)로 꼽히는 2005년산 와인을 2006년 진행한 앙프리뫼르에서 3000병 이상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불과 5년 만에 판매량이 200분의 1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와인업계가 주머니가 얇고 과음을 싫어하는 젊은층을 겨냥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불황을 뚫기 위해서다. 아영FBC는 ‘에스쿠도 로호’, ‘무통 카데’ 등 인기 와인을 기존 와인의 절반 크기(375mL) 병에 담은 ‘하프 보틀’ 제품 판촉에 힘쓰고 있다. 금영인터내셔널의 ‘모스카토 다스티’와 신동와인이 판매 중인 ‘로즈마운트 오(O)’는 여성 고객을 겨냥해 알코올 도수를 5.5∼9도로 낮춘 저도(低度) 와인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시장 누적판매량 1, 2위인 ‘몬테스 알파’, ‘1865’가 잇따라 다음 달부터 가격을 10% 내리기로 한 것도 “와인 가격이 내렸다”는 입소문을 내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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