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32만명 정규직化 햇살… 정부 “개인차원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4일 03시 00분


■ ‘사내하청 파견 2년이상 일하면 정규직’ 판결 파장

23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확정판결은 국내 노사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형식상 ‘도급관계’인 대기업 생산라인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인정하고 해고 책임을 원청업체에 물은 것이다.

자동차를 비롯해 조선과 철강 등 국내 주력 산업 대부분이 고용유연성을 이유로 상당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활용해 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0년 국내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근로자 수는 32만5932명으로 전체의 24.6%에 이른다.

○ 하도급과 파견의 차이


이번 소송은 2002년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도급 근로자로 입사한 최모 씨(36)가 노조활동을 이유로 2005년 해고된 이후 시작됐다. 최 씨는 즉각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원청업체인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사내하도급 업체 소속 직원이었기 때문에 원청업체의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도급과 파견의 가장 큰 차이는 근로자에 대한 지휘명령 체계다. 법원은 최 씨가 현대차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사실상 현대차에서 생산 지시를 받은 파견근로자로 판단했다.

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2년 이상 불법 파업이 적발될 경우 원청업체가 고용 의무를 진다. 최 씨의 해고 책임을 현대차가 지게 된 이유다. 현행 파견법은 32개 파견 허용업종을 정해놓고 있지만 제조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내 대기업 생산 공장에서 하도급 비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재 계류된 법원 판결과 노동위원회 판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현대차 사내하도급 근로자 1759명이 서울중앙지법에 근로자 지위확인을 묻는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방 및 중앙노동위원회에도 현대차 사내하도급 근로자 667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을 냈다.

○ 줄 소송은 미지수


이번 판결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원·하청업체 근로자가 같은 컨베이어벨트에서 근무하는 자동차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최 씨처럼 원청업체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도급이 아닌 불법 파견임을 입증해야 한다”며 “같은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자동차업계에 국한되는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사내하도급 비율이 61.3%로 가장 높은 조선업종의 경우 불법파견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는다. 조선업종은 작업 블록을 나눠 용접 등을 통째로 사내하도급 업체에 맡기기 때문에 지휘명령 체계에 따른 불법파견 시비가 적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동차 전자 등 라인 방식 작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지만 모든 사내하도급 업종으로 불법파견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명확히 결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이 모든 사내하도급을 불법 파견으로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불법 파견의 기준을 명확히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희비가 엇갈려


노동계는 이번 판결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판결은 불법 사내하도급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뜻”이라며 “정부가 사내하도급으로 위장되는 불법 파견을 적극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역시 “이번 판결이 관행으로 묵인된 불법 파견이 금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당사자인 현대차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내하도급은 강성 노조가 있는 상황에서 고용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대응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내하도급까지 불법 파견으로 막힐 경우 기업이 고용유연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제조업을 파견 업종에서 제외한 현행 법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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