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자동차 왕국 미국서 우리車 산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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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해외 연수나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면 어떤 차를 사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동차의 가격이 싼 미국에서는 외국 브랜드에 더 눈길이 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오히려 10년 만에 다시 국산 자동차로 돌아왔습니다. 현대자동차의 2012년형 ‘제네시스’를 구입하게 된 것이죠.

자동차 담당 기자의 입장에서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포르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세계 최고 브랜드의 자동차들을 자주 타다 보면 브랜드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고 정말 그 자동차가 가진 고유의 성능과 품질, 디자인을 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제네시스는 제게 자동차로서 합격점을 받은 셈입니다. 기자는 1993년부터 ‘스쿠프’, ‘쏘나타2’, ‘마르샤’, ‘아카디아’, ‘SM525’ 등 국산차를 타오다 2002년부터는 독일산 세단을 타왔습니다.

국산차를 칭찬만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닙니다. 제네시스는 이미 국내에서 5차례나 시승을 했지만, 지난 6개월간 직접 소유하며 7800마일(약 1만2500km)을 주행해보니 개선해야 할 점들이 더 자세히 보였습니다.

좋은 점부터 보자면 승차감이나 정숙성, 디자인 등이 독일산 럭셔리 브랜드 중형차의 90% 수준에 다가섰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차분하게 모는 운전자나 뒷좌석에 타는 입장에서는 해외 럭셔리 브랜드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품성이 올라갔습니다. 액티브크루즈 컨트롤이나 자동브레이크, 차로이탈경고시스템 등 가격 대비 풍부한 편의장치들도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선 유지 보수의 편리함까지 감안하면 수입차를 타던 일부 고객이 제네시스로 돌아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오래 운행을 하다 보니 따라잡지 못한 나머지 10%가 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우선 운전의 재미를 줄 수 있는 핸들링이 가장 아쉽더군요. 고속주행을 할 때 운전자가 의도하는 라인을 가볍게 따라와 주지 못하고 억지로 끌려오는 듯했는데 이 때문에 전반적으로 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가속을 해나갈 때 엔진 출력이 매끄럽게 선형적으로 나오지 않고 미세하게 계단형으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도 거슬렸고, 브레이크의 경우 성능 자체는 괜찮았지만 정지하기 직전에 차가 앞뒤로 꺼떡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서도록 조절하기가 어렵더군요. 실내 인테리어는 처음에 볼 땐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는데 6개월이 지나니 너무 단순하고 쉽게 질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운전자정보시스템(DIS)의 모양은 멋지지만 실제로 차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범위는 넓지 않아서 ‘하이테크’적인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채용하는 가솔린 직분사(GDI)의 공통적인 문제라고는 하지만 배기구에 검댕이 시커멓게 끼는 것도 걱정스러웠습니다.

현대차가 따라잡지 못한 이 ‘10%’는 사소해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해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고 럭셔리 클래스로 올라서기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자동차산업이 숨가쁘게 성장을 향해 달려왔다면 이제는 섬세하게 작은 부분도 가다듬는 능력을 발휘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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