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젊은이들의 창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중소기업청의 청년창업 지원금은 지난해보다 149% 늘어난 1조5893억 원에 이를 정도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대기업의 고용창출 능력도 한계에 부딪히자 청년창업을 돌파구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젊은 창업가들이 실제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적잖은 걸림돌이 있다. 창업지원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동아일보의 ‘2040 열린포럼’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젊은 창업가 20여 명과 창업 컨설턴트, 박병엽 팬택 부회장을 초청해 ‘구글, 애플과 같은 21세기형 기업가정신 어떻게 북돋울까’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 “게임산업 규제… 어쩌라는 건지”
“정부가 지원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매출이나 직원 수 등 ‘규모’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력이 있어도 회사가 작으면 번번이 탈락하기 십상이죠.”
원준희 그린티어 대표는 지난해 정부의 기술개발지원사업에 참여했다 떨어진 자신의 사례를 들며 정책자금 선정 기준이 양적인 평가에만 치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선박 제조업체인 그린티어는 전기자동차 분야 연구원 출신들이 모여 창업한 회사다. 하지만 아직 매출 실적이 미미하고 직원도 적어 지원 대상 선정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NHC의 김병하 대표는 “그나마 제조업 분야는 지원받기가 유리하다”며 “정부가 만든 사업계획서 양식을 쓰다 보면 콘텐츠 서비스 기업들은 별로 쓸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제조업을 기준으로 신청서류 양식을 만들어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하려는 사업가들은 난감하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업체나 시장 상황 등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김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국내 1인 창조기업 상당수가 서류 작성 단계부터 막혀 아예 지원금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글이나 페이스북 창업자가 만약 한국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 했다면 결국 서류 작성이 어려워 포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참석자들은 최근 정부가 잇달아 게임산업 규제책을 내놓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투자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벤처캐피털 업계가 그나마 게임 업체에는 투자할 의향을 갖고 있지만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마저 돈줄이 끊기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한국의 창업지원 시스템 자체는 이미 잘 갖춰졌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이날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럼에 참석한 이동호 폰플 대표는 “3만 원으로 창업한 우리 회사에는 사관학교에서 지원한 7000만 원이 큰 도움이 됐다”며 “창업 이후 여러 단계를 연계해 주는 시스템도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 무조건적 기업문화 모방은 ‘성장의 독(毒)’
참석자들은 창업 후 인사관리나 기업문화 등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미팅 주선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계익 시크릿가든 대표는 최근 경쟁업체가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핵심 기술인력을 빼내 가는 바람에 곤혹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박 부회장은 국내 대기업들에 인재를 빼앗겼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많은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하기보다는 초기 단계부터 두 명 이상의 인재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핵심 연구개발(R&D) 부문은 두 명 이상에게 업무를 맡겨야 한 명이 이직하더라도 남은 인력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나 친인척이 모여 창업한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는 단계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 이동호 대표는 “현재 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데 규모가 커지면 (일반 기업처럼) 시스템을 갖춰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창업교육 및 컨설팅 회사인 인재개발교육원의 안태욱 대표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시스템이냐, 전통적인 상명하복 시스템이냐는 해당 기업이 이익을 낼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라며 “결국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구글, 페이스북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기업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 초기 기업들도 무조건 모방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성장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IT만 벤처인가요?”
노광철 김치독 대표는 정부의 창업지원금과 교육이 정보기술(IT) 기업에 쏠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3년 전부터 새로운 건조기술로 김치를 만들어 국내뿐 아니라 일본의 아사히맥주와 야구장 등에 수출하고 있다.
그는 “정부에 수차례 벤처지원 자금을 신청했지만 ‘김치는 지원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결국 휴대전화 케이스를 만들면서 돈을 벌어 김치 사업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노 대표의 하소연을 들은 박 부회장 역시 “벤처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기업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T 기업에 대한 정부와 벤처캐피털의 집중 지원은 2000년대 초반 극심했다. 당시 관련 분야의 창업이 급증하면서 일부 IT 기업가는 투자받은 돈을 자신의 개인 돈처럼 쓰다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최근에도 정부 지원금이 IT 및 관련 분야에 집중되면서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이른바 ‘벤처 브로커’가 등장하는 등 젊은 창업가들의 도덕적 해이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안 대표는 “최근 정부 주도로 창업 열풍이 불면서 정부는 사업 환경을 조성하기보다는 하루빨리 실적을 내려는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고, 젊은이도 정부 지원금에 지나치게 의존해 창업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과거와 같은 ‘벤처 거품’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 “기업의 본질은 돈과 이윤… 사회 공헌은 부차적 문제” ▼ 강연자 박병엽 팬택 부회장
“기업가는 사회운동가가 아닙니다. 돈과 이윤을 좇아야 할 기업이 사회에 대한 역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박병엽 팬택 대표이사 부회장은 동아일보의 ‘2040 열린포럼’에 참석해 젊은 벤처사업가들에게 “기업가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최근 사회 일각에서 기업가에게 과도한 윤리의식을 요구하거나 사회적 기업의 모습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데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박 부회장은 미국의 록펠러와 카네기재단 등을 예로 들며 “기업 활동은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룰에 어긋나지 않기만 하면 된다”며 “먼저 부(富)를 쌓은 뒤에 우리 사회와 지역, 국가, 인류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청년 벤처사업가들이 정부나 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많은 사업가의 전기를 읽어 보면 제도와 시스템 없이도 성공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훌륭한 사람들은 제도에 기대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젊은 벤처사업가를 위한 맞춤형 조언도 잊지 않았다. 대부분의 참석자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업 아이템 개발이나 자금 마련, 판로 개척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일상적인 고민 외에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꽤 있었다. 박 부회장도 “20대였던 창업 초기에 어려움이 참 많았다. 특히 엔지니어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술 한잔하면서 넋두리도 듣고 칭찬도 많이 하면 나를 반대하던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돌아설 때가 많았다”며 ‘스킨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박 부회장은 ‘1박 3일’ 일정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행사장을 찾았다. 국내에서는 29세에 창업한 벤처 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젊은 벤처사업가들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박 부회장에 대한 질문은 1시간 넘게 계속됐다. 박 부회장은 어찌 보면 민감할 것 같은 질문에도 진솔하게 답변해 여러 차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피로가 채 풀리지 않고 시차 적응도 덜 됐지만 젊은 벤처사업가를 빨리 만나고 싶어 이곳으로 달려왔다”며 “다음에는 팬택 본사 구내식당에서 만나 같이 밥 먹으며 더 많은 고민을 나누자”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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