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김상수]車 애국심 마케팅 시대는 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7일 03시 00분


김상수 산업부 차장
김상수 산업부 차장
‘졸부(猝富), 50대 중장년층, 대기업 오너 2세, 애국심 없는 골 빈 ×.’

10여 년 전만 해도 ‘수입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 조직폭력배도 수입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조폭들이 “월세 30만 원짜리 집에 살아도 수입차 하나는 끌고 다녀야 폼이 난다”고 하던 시대가 있었다. 최근 대박 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도 최익현(배우 최민식 분)이 최형배(배우 하정우 분)를 처음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1978년형 벤츠 S클래스가 등장한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국내에서 수입차는 한동안 찬밥 신세였다. 처음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1987년 팔린 차는 겨우 벤츠 10대. 이후 1990년대에도 연간 판매량이 수천 대에 그치다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비약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개방 25년째인 작년에는 사상 처음 연간 판매량 10만 대(10만5037대)를 돌파했다. 올 1월에는 국내 시장 점유율이 처음 10%대(10.3%)를 넘었고 2월에는 신규등록대수가 919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8% 증가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야말로 ‘수입차 전성시대’다.

수입차가 잘 팔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외적인 환경 변화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관세가 단계별로 인하되면서 유럽산 완성차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됐다. 또 다양한 신차가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은 것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수입차 인기의 밑바탕에는 달라진 소비자 인식이 깔려 있다. ‘나이 먹은 부자들의 차’에서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이 타는 차’로 이미지가 바뀐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하고 실용성도 챙긴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수치(數値)로도 드러난다. 2007년 BMW를 가장 많이 산 고객층은 50대(38%)였다. 30대는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30대가 33%로 40대(34%)와 함께 BMW 구매 고객의 주류를 형성했다. 수입차 전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에서 개인이 구입한 수입차 가운데 3분의 1가량(34.5%)을 30대가 샀다. 이들은 무리한 소비도 하지 않는다. 작년 수입차 판매에서 배기량 2000cc 미만 중·소형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42.2%에 달했다.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국산차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내수 판매(상용차 제외)는 121만 대로 2010년보다 0.5% 감소했다. 수출(13.7% 증가)로 내수 시장에서의 부진을 상쇄했지만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받아들이는 위기감은 적지 않다.

사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그동안 8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국내에서 편하게 장사를 해왔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대로 실용성을 갖춘 수입차가 쏟아져 나오면서 더 이상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국산차를 타자”며 ‘애국심 마케팅’에 호소하던 시대는 갔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언제 20%, 30%가 될지 모를 일이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데스크의눈#자동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